여전도회도 분립하며 성장 거듭

여전도회도 분립하며 성장 거듭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지역 여전도회55

한국기독공보
2024년 02월 22일(목) 16:32
1892년 11월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도착했다. 이듬해 1월 28일 북장로교 선교사 빈튼의 집에서 모인 장로교 선교사들이 공의회를 만들며 비록 미국에선 장로교가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조선에선 단 하나의 장로교회만을 세울 것을 약속한다. 이러한 연합정신은 선교와 교육, 의료와 지역 정서를 넘어 선교영역을 정하는 모든 정책에 기초가 됐다.

미국 남북 전쟁의 갈등 구조 속에서 갈라진 미국장로교는 1983년 통합을 이뤘다. 약 130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 조선에서 하나의 장로교는 60년이 채 못 돼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1953년 한국기독교장로교회가 나뉘어 가면서 진보적 경향의 캐나다 선교부가 기장교단의 든든한 우군으로 따라나섰다. 1959년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장로교단이 양분되면서 한국교회의 대대적인 지형이 변했다.

광주 기독교의 산파구실을 했던 광주제일교회가 자리를 지키는 사이, 중앙(북문밖)교회와 향사리(서현)교회가 합동으로 분립됐다. 이 와중에 양림교회는 통합과 기장, 합동 양림으로 나뉘게 됐다. 그럼에도 교회는 성장했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광주 사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향기를 사회에 제공하는 든든한 젖줄이 됐다.

부인조력회로 시작된 광주 여전도회는 교단 간의 분립으로 제각각 다른 형태로 나뉘어 발전했다. 갈라진 형제들의 모습은 분명 가슴 아픈 현실이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광주에 복음을 가져다준 미국 장로교회가 130년의 갈등 속에서 하나가 되었듯 아픈 상처 속에 새살이 돋듯 광주 기독교가, 여전도회가 하나로 연합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현재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는 목포와 제주, 순천 등으로 분립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이래 광주노회 여전도회는 광주, 광주동 노회로 분립했다. 다만 전라남도 노회의 본령으로 남아 부인조력회의 정신과 비전을 아름답게 이뤄 나갈 것이다.

1952년 9월 16일 남부교회(광주제일교회)에서 열린 44차 전남노회에서, 부인조력회가 아닌 전남 여전도연합회로 이름이 바뀌어 보고됐다. 1922년에 시작된 부인조력회 시대를 마감하고 여전도회로 날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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