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를 바꿀 수 있을까?

일터를 바꿀 수 있을까?

[ 일터속그리스도인 ]

김성우 교수
2024년 04월 03일(수) 15:05
최근 일에 찌든 사회에서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일터를 갖기도 힘들고 일터를 얻고 난 후에도 살아가기 쉽지 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 단어는 워크-라이프-밸런스(Work-Life Balance)에서 첫 자를 따서 '워라밸'이리고 부르는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성취와 즐거움의 조화이다. 그만큼 일에 대한 성취와 여유로운 삶이 균형 잡히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추구는 일터 그리스도인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터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것은 일과 신앙의 균형 잡힌 삶이다(Work-Believe Balance, 워빌밸). 하지만 일과 신앙이 균형 잡힌 삶이란 쉽지 않다. 일과 신앙의 불균형은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갈등과 고민하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직장이, 일터가 소망과 생명을 주는 곳이 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일터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반대되는 가치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보면, 일터는 생명을 유지하고 인간의 번영을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창세기 2장 9절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고, 16절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첫 번째 일터였던 에덴동산은 풍성했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번성할 수 있는 최상의 일터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일터는 그렇지 못하다. 일터는 더 이상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번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무한 경쟁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 실적에 대한 압박과 불안감, 자리 유지에 대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아니 실제로 이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인하여 우울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제 일터는 더 이상 꿈의 공간이 아니라 뼈를 깎아 내야 하는 '고된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조직된 곳이 아니라 자본이 바탕이 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그 힘을 자랑하면서 어느새 맘몬으로 자리하였고 사람을 지배하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일터는 철저하게 자본의 힘, 맘몬의 힘에 근거해서 세워졌다는 말이다. 자본을 위해서 사람은 맘몬 앞에서 부속품처럼 취급당하고 정작 중심이 되어야 할 사람이 일로부터, 심지어 일터로부터 소외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직 안에서 인간의 생명, 인간의 풍요, 인간의 번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조직에서 한계를 느낀 일터 그리스도인은 일터를 바꾸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과연 일터를 바꿀 수 있는 문제일까? 니체는 노예의 윤리 편에서 힘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주인들에게 저항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바꾸면서 새롭게 지배하는 법을 말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는 말이다. 세익스피어는 "이 세상에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오직 생각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각 때문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생각은 오랫동안 습득되어 온 가치관에서 발현되어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감정은 변화무쌍해질 수 있다.

이러한 원리에서 본다면, 직장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일하는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녹아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다른 말로 하면, 삶의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류민과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세상과 다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일상교회』라는 책에는 그리스도인은 "거류민이자 나그네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고 선교적 공동체의 소명"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선교적 사명을 가진 존재로서 복음적 삶을 사는 존재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명감으로 다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대안 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는 일터 목회자 사역자들과 일터 평신도 사역자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다름의 방식은 '친절함의 방식'이다. 공동체 멤버 중 한 여성 목사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다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미용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일터가 아니라 생명과 인간 번영을 위한 선교적 공간이다. 그곳에서 친절함의 방식으로 영혼을 살리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관점을 바꾸면, 달리 보인다. 생각을 바꾸면, 다른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보게 된다. 일터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건 일터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우리 신앙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다. 일터는 비록 악한 구조 속에 세워졌지만, 그리스도인은 일터를 하나님 창조의 질서로 회복해 가야 할 사명이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일터 그리스도인으로 선교적 삶으로, 복음적 삶으로 부르고 계신다. 이 부르심 앞에 순종함으로 일터가 더 이상 고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요로움이 흘러넘치는 축복의 땅으로 바꾸어 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김성우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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