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몇 살?

엄마 몇 살?

[ 목양칼럼 ]

김웅식 목사
2024년 04월 11일(목) 18:25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령인구가 많아졌다. 특히 농촌은 그 실태가 심각할 정도로 어르신들의 비중이 높다.

자녀들이 생계와 직장을 따라 도회지로 나아가다보니 농촌을 지키는 이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님이 시골에 계신 도회지 자녀들의 일상은 늘 부모님의 안부를 여쭙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 교회 권사님의 딸이 서울에 사는데 매일 아침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서 하는 말이 "엄마, 몇 살?", 그러면 권사님은 딸에게 "여든 넷"이라고 대답하신단다. 그러면 곧 바로 권사님의 딸은 안심한듯 "됐어!"라고 답한단다. '오늘도 우리 엄마는 치매에 안 걸려서 안심할 수 있다'는 의미인듯 하다.

오고가는 대화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의 영혼은 안녕하신가?'라는 생각이다. 많약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일상의 대화를 영적인 대화로 진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엄마. 예수 믿고 천국갈 줄 믿지?", "아멘! ", "됐어!"

인생의 말로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인생 말로의 패턴은 늙어서 질병에 걸려 있다가 병세가 심해지면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거쳐 장례식장으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농촌 어르신들의 현재 인생여정은 늘 정리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살이인 인생처럼 매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의 소망을 더 간직할 신앙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한 번은 어르신을 모시고 목욕탕에 가게 됐다. 옷을 벗으시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도와드리는데 옷을 얼마나 겹겹이 입으셨든지 벗겨드리려니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벗겨도 또 벗겨야했다. 연세가 드시면 외로움만 계실 줄 알았는데 차가움도 몇겹으로 찾아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외로움과 차가움도 모자라 내세의 준비가 되지 못해 괴로움까지 보내 진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농촌의 목회는 특히 복된 여생을 위한 특수목회라고해도 괜찮듯 싶다. 구원의 은총을 힘입어 영혼의 잘됨이 있는 오는세대를 잘 준비해 드리고 죽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가는세대를 복되게 해 드리는 것이 농촌목회의 특수성일 것이다.

농촌은 지역사회이다보니 신자든 불신자든 한 가족처럼 지낸다. 동네 주민의 장례식이 있어 불신자 가정이지만 문상을 하다보면 문상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칭찬이 칭찬이 될 수 없는 까닭은 지역주민의 영혼의 파수꾼으로서의 책임감에서 오는 자책감 때문이다. 이 지역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감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족함이 말 할 수 없이 엄습한다.

문상을 하고 돌아오면서 차안에서 괜시리 혼자말로 투덜거려본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라고 할 때 믿었으면 내가 안 불편하잖아요?"

복음을 믿고 안 믿는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전하고 기도하고 돌보는 것은 분명히 우리의 책임 하에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키신다.

오늘도 "엄마, 몇 살?", "여든 넷!", "됐어!"라고 주고 받는 대화속에서 복음을 영접하지 못한 동네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영혼의 안녕을 소명감으로 명령받는다. 더 이상 내가 불편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심정으로 진지하며 간곡하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하게 하신다. "이제는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김웅식 목사 / 범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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