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의 묘미

장날의 묘미

[ 목양칼럼 ]

김원주 목사
2024년 04월 10일(수) 08:00
우리 교회 창문으로 내다보면 보일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5일에 한 번씩 꽤 큰 장(場)이 들어선다. 장날이 되면 이른 새벽부터 벌써 차들이 들어오고, 천막들이 쳐진다. 도시에서는 언제든지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을 구입할 수 있지만, 여기는 장날까지 기다려야 하니 처음에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하는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장날의 묘미(妙味)가 있기 때문이다.

장이 들어설 때 보면 아무데서나 장사하고 기준도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구역이 정해져 있고 질서가 있다. 계절마다, 명절마다 장에 나오는 물건들이 다르다. 볼거리가 있고, 먹을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값이 싸다. 장이 파할 때쯤 가면, '떨이'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인심도 좋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에 나왔다는 할머니는 하나 값에 두 개를 준다.

만남의 즐거움도 있다. 성도들도 교회에서 만날 때와 장에서 만날 때는 그 느낌이 다르다. 만나면 서로 웃고, 인사하고, 무언가를 사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동네 어른들도 장에서 만나면 더 친근하다. 신선함도 있다. 우리 집 가족들이 좋아하는 두부와 순두부는 일찍 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장날 이른 시간에 사온 두부가 아침식탁에 올라올 때면 따뜻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장에서는 누구나 팔 수 있고, 누구나 살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장날이 기다려진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며 기다린다. 왜냐하면 한 번의 장날을 놓치면 다시 5일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준비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다. 장날 구입할 목록을 미리 적어 놓는다든지, 구입할 재료에 따라 먹을 음식이나 반찬 만들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장날이 하나님의 은혜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냥 주어지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준과 질서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영적인 볼거리들과 영적인 양식이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떤 순간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 가운데도 주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심 좋은 할머니 그 이상이다.

그냥 먹고 마시는 교제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성도의 교제는 느낌이 다르다. 동네 어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바라보면, 더 친근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침마다 새롭고 신선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누구나 전할 수 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기대하며, 사모할만하지 않은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미리 계획하고, 준비할 만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은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부활의 소망, 천국의 소망도 다르지 않다.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삶이 그러하다.

그것들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준과 질서가 숨어 있으며, 영적인 볼거리와 먹을거리들로 넘쳐난다. 무엇보다 그런 것들은 언제나 값없이 주어진다. 영적인 아름다운 교제가 있고, 날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영적인 혜택을 누림에 예외는 없다. 그야말로 복음이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이러하다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기대함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기다림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하는 기다림이 있다면, 일상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해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봄이 왔다. 며칠 후면 또 장날이다. 이번 장에는 어떤 봄소식들이 장터를 수놓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장날을 기대하며 기다려본다.



김원주 목사/후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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