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달라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달라야 한다

[ 주간논단 ]

박재필 목사
2024년 05월 14일(화) 00:00
윤리학에서 도덕을 정의할 때 '이웃과 사회에서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라고 하고, 기독교윤리학에서는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라는 설명을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람과 세상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강조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이 비록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할 수 있는 힘을 내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의 내용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후 8:21)고 말씀한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3,14) 말씀하셨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 특히 교회와 교계의 지도자인 이들이 교회 안에서는 힘을 쓰지만 세상과 이웃 속에서는 전혀 힘과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많다. 교회와 교단 안에서는 막강한 교회권력을 사용하지만 세상에서는 부끄러운 행태로 주님의 영광을 가린다. 지난달에 끝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출마자의 삼분의 일 가까운 후보자가 전과자라는 기사를 여러 번 읽었다. 물론 민주화운동 시기에 그 운동 전력 때문에 수감된 이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 금융사기, 치정, 폭력, 성적 비위, 문서위조 등으로 처벌을 받은 후보자들도 많았다. 그런 전과자들이 지도자로 선출되고 그들에게 나라의 정책과 법률 제정 등을 맡긴다는 사실이 암담하다. 장관급 고위공직자 임명 전에 청문회를 하면 후보자들은 이제 너무도 당연하게 위장전입, 재산신고누락, 자녀 입시관련 비위, 이전의 자리에서 저지른 부정행위, 세금포탈, 논문표절 등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운 부정행위들이 있다. 국회의원은 물론 나라의 지도자급에 있는 이들 삼분의 일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그들만이라도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한다면 나라가 이렇게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지도자들만 그러한가? 교회와 교계 안의 지도자들은 괜찮은가? 도농(都農) 지역에서 목회하는 후배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장로 한분이 교회의 승합차량을 자기가 농사 짓는 일에 사용한다고 한다. 비료나 농약을 쳐야 할 시기, 추수할 때 등에 교회 차량에 장비와 비품을 싣고 가 개인차량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교회 공적인 차량이니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더니 야박한 목사라고, 교회의 것을 교인이 쓰는데 말린다고 역정을 내서 관계가 많이 힘들어졌다는 고민이다. 일반 교인은 엄두도 못내는 일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물품과 재정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연일 터져 나오는 성적 비위의 문제들, 교회 재정사고, 정치적 견해와 이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문제들이 심각한 지경이다. 우리의 당회, 노회, 총회 회의 과정을 과연 일반 교인들에게나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를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학문적으로도 가짜 박사학위가 제일 많은 분야가 신학 또는 목회학이라고 하고, 설교를 표절을 하고, 교회와 지도자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은 이제 세상이 교회를 염려할 형편이 되었다. 작금의 이런 상황들을 볼 때 교회는 과연 세상에 은혜와 덕을 끼칠 수 있을까.

본회퍼 목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말할 때 '타자(他者)를 위한 교회, 타인(他人)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한다고 했다. 교회와 총회, 교단들이 약간의 복지사업이나 교육사업을 한다고 세상에서의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교회와 교계는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 사명을 잃는 순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교회는 교회가 아닐 것이다. 교회의 윤리는 세상 윤리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어야 한다.



박재필 목사/청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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