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인정하고 파트너로 협업하기

상대를 인정하고 파트너로 협업하기

[ 논설위원칼럼 ]

김종생 총무
2024년 05월 13일(월) 17:07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문학적 영성으로 울림을 주고 떠난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로 연합과 일치의 한국교회를 그려보고자 한다. '날개'는 날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의 몸을 비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기능을 할 때도 있다. 그때는 '덮개'가 된다. 또한, 둥지 속에서 알을 품고 있는 날개는 날개가 아니라 '품개'다.

이어령 선생은 날개보다 더 소중한 날개인 '품개'라는 말을 50년 뒤 이 세상을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우리말 사전에 없는 이 새로운 말 '품개'가 당신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며 나와 다른 것과 싸우지 말고 품으라고 부탁하면서 기계와 자연, 그리고 지구와 하늘의 별까지 모두를 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강조했다.

품은 본래 윗옷을 입었을 때, 윗옷과 가슴 사이의 틈을 뜻하는데 따뜻하게 감싸 주거나 보호해 주는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삶과 기억 속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품은 단연코 엄마 품이다. 열 달 동안 자식을 몸속에서 키워오며 체력과 영양을 나눠온 엄마는 출산 후 양육할 때도 우선으로 자식을 품에 안는다. 그래서 엄마 품은 한없이 크고 포근한 것이리라.

우리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주님께서 택하신 12사도의 면면을 보자. 수제자 베드로는 나서기를 좋아하며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모친을 동원하여 인사 청탁까지 하였다. 세리 마태는 로마 정부로부터 세금징수 권한을 남용하여 동족을 갈취하는 매국노로 손가락질받던 사람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는 기록이 말하듯 그 가운데 스승을 배신할 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유다를 택하고 조직의 중요한 재정을 맡기셨다. 예수님은 이들을 모두 품에 안으셨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도,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하나뿐(엡 4:4~6) 임을 강조한다. 당시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종 등 민족적, 지역적, 신분적 차이 등 여러 복합적인 갈등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다름과 차이를 넘어서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힘입어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며 교회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또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너희 마음을 넓히라(고후6:13)"고 권면하면서 좁아졌다면 그것은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고, 본래 우리의 마음은 넓다고 강변한다. 포근한 품과 넓은 마음! 그것이 주님의 바람일 것이다.

직원 경건회에서 매번 마지막 순서로 주기도문을 함께 한다. 구 주기도문과 달리 새 주기도문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나오는데 이 '아버지'가 가부장제의 권위로 다가와 자신을 짓누른다는 의견이 있었다. 직원의 고민에 공감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상의하던 중 다양한 주기도문이 있으니 마음에 와닿는 주기도문을 선택해 사용하기로 하였다. 획일과 일치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본은 다르다. 강압적으로 여겨지는 아버지가 다섯 번이나 언급되는 새 주기도문을 절대화하고 강요하는 것은 넓은 품을 원하신 주님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배제하고 담을 치는 많은 경우는 주님의 뜻이기보다는 우리의 경험과 감정의 편 가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와 다르다고 싸우기보다 인정하고 감사로 품는 5월을 소망해 본다. 서로 다름을 옳고 그름의 기준 대신 다양성으로 여겨 더 풍성한 5월을 기대한다. 나와 다른 상대 혹은 함께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단절하고 싶은 이들이라 해도 우리 주님은 그들을 가라지로 뽑아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를 요구하신다. 나누고 담을 쌓기보다 자신을 제한하시며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상대를 인정하고 파트너로 협업하는 좋은 훈련의 기회로 삼아가면 좋겠다.

김종생 총무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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