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만 더

한 발짝만 더

[ 현장칼럼 ]

길준수 사무국장
2024년 05월 24일(금) 22:10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애타게 부르짖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일터 건물 옆 수풀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발길을 멈춰 세웠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울부짖음에 사무실 직원들도 뭔가 홀린 듯 소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야생 고양이가 들킬 일이 없다.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도, 모습을 감추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돕고 싶은 마음에 해결책이 분분했다. 신고하자고도 했고, 어미가 와서 데려가도록 그냥 두자고도 했고, 조그만 집과 먹을 것을 마련해 주자고도 했다. 그러나 결국 어찌할 바를 몰라 발길을 되돌린다. 하나둘 사람은 사라지고, 다시 울음소리만 그 공간을 채웠다.

울음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은 인간 본성이 아닌가 보다. 수많은 울음소리를 외면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더욱 그리 생각된다. 살려 달라 소리치면, 가는 길 멈추더라도, 거기서 더 나아가는 법이 드물다. 아기 야옹이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1시간여 지났을 즈음,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어미가 데려갔는지, 사람이 데려갔는지, 스스로 살길을 찾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동안 '직장 썸 타기'라는 말이 유행했다. '썸'은 '썸씽(something)'의 줄임말로, '남녀가 사귀기 바로 전 서로를 알아가며 친하게 지내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썸'을 직장과 연결하면, 직장에 너무 푹 빠지지 말자는 의미가 된다. 남녀가 썸 타는 정도에서 서로 부담 없이 만나는 것처럼 직장생활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워라밸'이라는 신조어와도 일맥상통한다. 한동안 정치권 구호로 사용했던 '저녁이 있는 삶'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직장에 너무 헌신적이거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과몰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삶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썸 타는 것이 '주변을 살피지 말고 자기 일만 하라거나 책임을 적게 지는 것이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리라 생각한다.

몇 개월 후, 이번엔 '새끼 청둥오리'가 센터 주변에 나타났다. 센터를 이용하시는 몇 몇 어르신이 도로를 질주하는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 두 마리를 발견하고 차에 치일까 봐 조심스럽게 센터 옆 놀이터로 몰아넣은 상태였다. 한 분 어르신이 사무실에 도움을 청했다. 새끼 고양이가 출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뭔가 홀린 듯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나 해결책이 분분했다. 갓 태어난 새끼 두 마리를 지키려는 엄마 오리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한 직원이 멋진 아이디어를 냈다. 센터에 설치한 반려동물 임시보관함을 이용해 새끼 오리를 옮기자는 의견이었다. 바로 실행했다. 보관함을 한쪽 구석에 두고, 직원 세 명이 오리들을 조심스럽게 몰았다. 감사하게도 세 번째 시도 만에 새끼 오리 두 마리를 보관함 속에 들여보냈다. 엄마 오리가 난리다. 괴성은 들리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오리 심정이 느껴져서 일까? 부모 마음이 이해되어서 일까?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 두 직원이 뛰기 시작했다. 센터 옆 하천을 향해 달려갔다. 신기하게도 엄마 오리가 이미 와 있다. 물가에서 보관함 문을 열자마자 새끼 오리들이 엄마를 향해 내달린다. 멀찌기 헤엄치던 엄마는 말할 것도 없다.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순간, 하천 위쪽 센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유유히 헤엄쳐가는 오리무리를 확인한 후에야 두 직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비 맞는 줄도 모르고 '한 발짝 더' 나간 이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종종 인간 본성을 거스르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를 구조해 먹이고 보살피다 입양까지 책임져준다. 물속에 빠진 사람을 보고 바로 뛰어든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보호자가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준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는 것은 이렇게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일터에서도 직장과 썸을 타는 직원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한 발짝만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회복지라는 것이 원래 그런 일이니까!

문제는 직원들을 향해 '한 발짝만 더' 나아가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지시든 설득이든 잠깐은 효과적일지 모르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관건은 자발성에 있다. 직장 썸 타기를 즐기는(?) 종사자들에게서 이 자발성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난 아직도 그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 본을 보여야 한다거나 사회복지의 근본 목적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답을 내놓고 싶지는 않다. 아주 가끔, '한 발짝 더' 나아간 직원을 발견하면, 그저 격려 한마디 보탤 뿐이다.



길준수 사무국장 / 구립월계노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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