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마비로 죽음 문턱...다시 일어선 믿음의 테너

성대마비로 죽음 문턱...다시 일어선 믿음의 테너

[ 문화 ]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남자 주역상 수상한 테너 강신모 교수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01월 01일(월) 15:52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남자 주역상은 올 한 해 동안의 활동 결과 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활동과 경력과 능력 등을 종합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평생 단 한번 받게 되는 상입니다.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큰 영광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6일 한국 오페라계의 가장 큰 상인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주역상을 수상한 테너 강신모 교수(르엘오페라단 부단장)는 "오페라라는 장르는 혼자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땀 흘리며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참고 견디면서 서로 배려 하고, 좋은 팀웍으로 좋은 공연 만들어준 훌륭한 동료 성악가들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며 자신의 수상을 함께 공연한 동료들과 자신에게 배역을 맡겨준 단장들에게 공을 돌렸다.

강 교수는 한양대 음대 졸업후 이탈리아 레스피기 국립음악원과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성악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유학 시절 베르비에, 툴루즈, 마르멍드, 쟈코모 아라갈, 메르카단테 등 19개의 세계적인 국제성악콩쿨을 우승한 후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성악가다. 그러나 지금의 훌륭한 테너가 되기까지는 예기치 않은 고난도 많이 겪었다. 가장 심한 고난은 군생활 중에 발생했다. 군복무 시절 갑자기 성대마비가 와 목소리를 잃어 버리고, 호흡곤란 상태까지 빠져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그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정만 바라보는 생활을 8개월이나 이어가다가 어느날 호흡곤란으로 7시간 동안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가 겨우 살아났으나 더 이상 군대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군의관의 소견을 받고 조기 제대해 집에서 투병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기침을 하는 도중 목소리가 돌아와 있음을 확인한 그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강 교수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저에게 이런 시험을 주시냐며 원망을 했었지만, 곧 마음의 입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부르던 찬양은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였다"며 "지루한 투병이 계속됐었지만 '내 사랑하는 아들 신모야. 힘들지? 하지만 난 널 사랑한단다. 넌 반드시 낫게 될 것이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찬양 하는 사람이 될거야'라는 위로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일생일대의 경험에 대해 "하나님께서 저를 찬양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저를 호되게 시험하시고 훈련시키셨다"며 "목소리를 찾은 것을 알게 된 순간 바로 무릎을 꿇고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평생을 하나님을 찬양 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기도를 올린 것을 평생 기억하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성대마비로 인한 트라우마를 바로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유학시절 그의 별명은 '잔자라강'이었는데 이탈리아어로 '모기'라는 뜻이다. 성대에 대한 염려로 모기 소리처럼 작은 소리를 낸다고 붙은 별명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콩쿨에 나가기만 하면 입상을 했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 대부분이 장엄하고 스케일이 큰 곡을 부르는데 반해 잔잔하고 섬세한 곡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서 휴식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정식으로 오페라 무데에 데뷔하자 그의 작은 목소리는 큰 장벽이 되었다. 관객들과 전문가들은 그의 목소리가 객석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며 점점 그는 무대에서 외면당했다. 고민에 빠졌던 그는 어느날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소리를 내며 노래를 했다. 1막이 끝나고 그의 아내가 무대 뒤로 뛰어와 오페라 끝날 때까지 지금 소리를 유지해보라는 당부를 했다. 오페라를 마치자 다음 시즌 작품 제안이 바로 들어왔다는 매니저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7년간 유럽 무대에서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어느날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을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고 나이드신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 남아 곁에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 이후 약 9년간 한국의 여러 오페라단에서 수십편의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하고, 결국 한국 오페라 최고의 상까지 수상하게 된 것.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목사인 아버지는 매번 싸움으로 갈라진 교회, 빚더미에 앉은 교회, 문제 투성이인 교회로만 가셔서 어렸을 때는 너무 힘들고 화가 나서 집과 교회를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우리 아버지가 가장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버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어려운 곳으로만 가셨는데 저 또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한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제1의 덕목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직업이 오페라 가수이다 보니, 세상의 노래들를 부를 때가 많은데, 그 때에도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길 원한다"며 "성대마비로 목소리를 잃었었을 때 하나님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여 주셨듯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하나님을 찬양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계획이고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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