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로!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4> 자유의지와 은혜 논쟁

박경수 교수
2019년 07월 26일(금) 00:00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일까, 아니면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 자유의지의 역할을 동시에 강조해야 한다는 요한 카시아누스의 주장이 그것들이다.



펠라기우스

영국 아일랜드 출신인 펠라기우스는 자신의 남성성을 거세하고 수도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405년경 로마를 방문했을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타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그는 그리스도교 복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항하고 선을 좇아 살아가도록 고무시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교 도덕주의자로서 인간의 도덕성이 올바로 세워지는 사회를 갈망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선하게 창조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인간이 아담의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죄인이며, 따라서 인간은 죄를 짓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인간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또한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만일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될 것이며 도덕적 사회에 대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펠라기우스에게 자유의지는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였다.

펠라기우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필수조건은 아니다. 은혜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도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인간이 원죄를 타고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을 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과연 인간에게 구원자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만큼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은 드물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의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소위 '은총의 박사'라고 불린다. 이것은 은총론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는 인간이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와 거의 비슷한 때(ca. 354)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다. 죄와 자유의지와 은혜를 둘러싸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논쟁은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는 아담에게만 영향을 끼쳤고 그의 후손에게는 전가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인간이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범하였고 그 원죄가 모든 후손에게 전달되었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인류의 연대성과 통일성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그는 타락 이후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에 속박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선을 행할 자유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원죄를 해결하고 죄에 속박된 의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는 이 은혜가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선행적이고, 저항할 수 없으며, 공적에 따른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타락 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누렸지만, 타락 후에는 인간의 의지가 왜곡되어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죄에 빠진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에게 반문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을 제쳐두고 오직 인간의 본성과 의지에 따라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닌가?'



요한 카시아누스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의 논쟁은 제3차 보편공의회인 431년 에베소교회회의에서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논쟁의 종식은 아니었다. 이후 소위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 불리는 입장이 등장하여 논쟁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펠라기우스가 강조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하나님의 은혜를 결합하여 '신인협력설'(神人協力說)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프랑스 마르세유의 수도원장 요한 카시아누스는 하나님 은혜의 주도권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 모두를 옹호하고자 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인간이 의로워지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펠라기우스처럼 이 은혜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인간 의지의 협력 또한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서방교회는 오랑주교회회의(529)에서 반(半)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함으로써, 펠라기우스주의나 반(半)펠라기우스주의 견해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을 수용했다.



오직 은혜로?!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쟁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다시 불붙었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선택의 자유에 관한 강론'(1524)을 저술하여 인간의 행동의 책임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맞서 루터는 '의지의 속박에 관하여'(1525)라는 저술을 통해 에라스무스의 주장을 일일이 논박했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재확인하면서 적어도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직 은혜'의 가르침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고백이다.

박경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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