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되어주는 이들 있어 감사"

"피난처 되어주는 이들 있어 감사"

[ 송년특집 ]

김동현 기자 kdhyeon@pckworld.com
2023년 12월 28일(목) 13:12
안산에서 거주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난민들. 왼쪽부터 김 스벳뜰라나, 디마 니샤노브, 김 아나스타시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피난민을 발생시킨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지난해 2월 발발 이후 전쟁 2년차를 맞는 올해,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약 63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전쟁난민으로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폴란드 등 유럽국가에 정착했지만, 이 중에서 한국행을 택한 이들도 있다. 바로 고려인들이다.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살던 고려인과 그 가족 약 3000명이 전쟁을 피해 한국에 들어왔다. 타지생활을 이어가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안산에 소재한 우크라이나 난민 한글학교를 찾았다. 이들은 낯선 한국 땅에서 적응의 어려움과 생계에 대한 부담, 불확실한 미래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부모·조부모의 고국이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그들에게 한국은 낯선 땅이다. 특히 한창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 자녀들에겐 더욱 그렇다. "아들만 잘 적응해줘도 걱정이 없겠다"고 말하는 김 스벳뜰라나 씨(47세)는 14살 아들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주민이 많은 안산 지역의 학교들은 한국어를 못하는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특별반을 따로 편성해 운영하지만, 유럽의 언어와는 모양도 문법도 다르다 보니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어를 잘 못하니 친구들도 사귀기가 어렵고, 공부도, 진로 준비도 모두 막막하기만 한 상황.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김종홍 선교사는 "청소년들의 경우 한국학교에 적응이 어렵다보니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는 난민부모들도 많다"며 난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전했다.

또 비자 문제도 이들에게 큰 고민거리다. 본인이 고려인인 경우에는 방문취업비자(H-2)가 발급돼 3년간 취업활동이 가능하지만, 고려인이 아닌 배우자의 경우에는 정식적인 취업활동이 가능한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

남편이 고려인인 김 아나스타시아 씨(37세)는 "남편이 건설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다섯 식구가 살아가기엔 빠듯하다"며 "나도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서 살림살이에 보태고 싶다"고 토로했다.

올해 성년이 된 디마 니샤노브 씨(18세)도 비자 문제로 고민이 많다. 니샤노브 씨의 비자는 난민비자(G-1)로 취업이 불가능하다. 이제 성인이 되어 한창 꿈을 펼쳐야할 시기에 비자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고려인인 어머니가 한국에 계시면 동포자녀 자격으로 취업 가능한 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세 동생들을 데리고 루마니아에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상 어린 세 동생의 여권 신규발급이 어렵고, 한국에 온다 해도 한국어가 서툰 어머니가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니샤노브씨는 "한국에서 계속 일과 공부를 하고 싶지만 비자문제가 걸려 힘들다. 내년에는 비자문제가 잘 해결돼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마련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고 오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한 해였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아나스타시아씨는 "언제 전쟁이 끝날지, 전쟁이 끝나도 돌아갈 수는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교회공동체와 난민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만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벳뜰라나 씨도 "선교사님과 교회공동체, 그리고 한글학교를 통해 같은 난민들과 만나고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피난민으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감사는 피난처가 되어주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김동현 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