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특집 ] 교회, 부교역자가 부족하다 ④향후 교회가 해야 할 준비
성석환 교수
2024년 01월 19일(금)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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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목회자 수급의 불균형은 여전하다. 청빙할 수 있는 교회의 수보다 졸업하는 신학생이나 안수를 받는 목회자의 수가 현저히 많다. 그래서 졸업한 후에도 교회학교에서 일하거나 일주일 중 반 정도를 교회에서 일하는 등의 비전임 교역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도권에 국한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부교역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정말 "그 많던 부교역자들 다 어디로 갔을까?"
신학교 졸업생과 안수를 받는 이는 줄지 않았는데, 왜 부교역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이 문제를 단순히 교회 내부의 문제로 국한하면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청빙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교회가 원하는 교역자 상과 지원자들이 원하는 교회 상이 서로 다른 것이 핵심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나라의 인구변화와 함께 젊은 세대의 인식변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요즘 담임 목회자들을 만나면 듣는 소리가 있다. 요즘 신학생들 소명감이 부족하다거나 조건이 좋은 교회만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섬기고 있는 교회를 몇 개월 만에 사임하고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니, 요즘은 담임목사나 전임 교역자가 파트 교역자의 눈치를 살핀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전임 교역자를 보장해 줘도 그리 큰 감동(?)을 표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기성 목회자들의 눈에는 요즘 부교역자들이 교회를 소명의 사역지로 생각하기보다 생활을 위해 일하는 직장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종종 부교역자들과 이런 류의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은 단박에 이리 질문한다. "그게 왜 나쁩니까?"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직장이요, 목회도 자신들에게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부교역자들은 자신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가 줄어들고 있고, 수도권 지역의 주거비용은 부교역자가 감당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 제고 바람을 타고, 부교역자들에 대한 이런저런 복지혜택도 많이 줄었다. 자신들을 임시직처럼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 대응하여 일부 부교역자들은 자신들을 지킬 조합을 결성할 생각까지 하며 나서는 모양이다.
한국사회의 인구분포도 통계에 따르면, 앞으로 노령인구가 더욱 많아지고 청년세대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30여 년 전에는 중위연령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으나, 이제는 벌써 50대가 우리나라 중간 나이가 되었다. 50대가 아직 되지 않았을 부교역자들의 미래는 현재 담임 목회자나 전임 사역자들의 뒤를 지탱해주는 그야말로 부목(副木)의 역할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수적 열세에 놓인 부교역자들은 두 가지 노선을 택할 수 있다. 윗세대에 헌신하여 다음 자리를 보장받던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선교적 삶을 찾든지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전자는 매우 소수만 가능한 노선이다. 출신배경과 뒷배가 있어야 밀어주고 당겨줄 것인데,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목회환경을 조성하거나 아예 다른 땅에서 다른 일을 하려 한다.
신학교에서 예전과 다른 MZ 세대 신학생들을 접하며, '꼰대 선생'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목회자 후보생이 반드시 갖춰야 할 품위와 품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이전 세대와 다른 것, 아니 우수한 점이 많다.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활동에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위계적인 문화가 싫어서 또 경쟁의 기회가 공정하지 못한 것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교역자들은 적절하지 못한 사례비, 불공정한 청빙 절차, 교역자 간 위계적 관계 등이 불만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목회가 아니라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목회를 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그건 또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자신들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와 공정한 청빙 기회, 그리고 상호존중의 관계가 가능하다면 교회를 벗어나고 싶은 부교역자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정통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은 세금을 내고 있다. 이는 교역의 봉사와 섬김도 공공의 기준에 부합하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직업을 '소명'으로 간주한 칼뱅신학의 영향 아래 있어서 인식의 전환이 쉽지는 않겠으나, 이미 30~40대 부교역자들에게 교역은 생존에 필요한 일터이고 또 교회가 지원하는 사례비로는 오늘 한국사회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임을 이해해야 한다.
소명감이 부족하다며 그들만 탓할 수는 없다. 우선 부교역자들이 부당한 대우나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지 않도록 감시제도나 교역근로표준약관을 마련해봄 직하다.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는 이들을 지원할 제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해외선교사를 훈련하듯,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들을 지원하듯, 교회 밖에서 선교적 삶을 살도록 훈련하여 파송하는 제도적 절차와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다.
성석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교 졸업생과 안수를 받는 이는 줄지 않았는데, 왜 부교역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이 문제를 단순히 교회 내부의 문제로 국한하면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청빙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교회가 원하는 교역자 상과 지원자들이 원하는 교회 상이 서로 다른 것이 핵심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나라의 인구변화와 함께 젊은 세대의 인식변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요즘 담임 목회자들을 만나면 듣는 소리가 있다. 요즘 신학생들 소명감이 부족하다거나 조건이 좋은 교회만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섬기고 있는 교회를 몇 개월 만에 사임하고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니, 요즘은 담임목사나 전임 교역자가 파트 교역자의 눈치를 살핀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전임 교역자를 보장해 줘도 그리 큰 감동(?)을 표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기성 목회자들의 눈에는 요즘 부교역자들이 교회를 소명의 사역지로 생각하기보다 생활을 위해 일하는 직장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종종 부교역자들과 이런 류의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은 단박에 이리 질문한다. "그게 왜 나쁩니까?"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직장이요, 목회도 자신들에게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부교역자들은 자신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가 줄어들고 있고, 수도권 지역의 주거비용은 부교역자가 감당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 제고 바람을 타고, 부교역자들에 대한 이런저런 복지혜택도 많이 줄었다. 자신들을 임시직처럼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 대응하여 일부 부교역자들은 자신들을 지킬 조합을 결성할 생각까지 하며 나서는 모양이다.
한국사회의 인구분포도 통계에 따르면, 앞으로 노령인구가 더욱 많아지고 청년세대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30여 년 전에는 중위연령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으나, 이제는 벌써 50대가 우리나라 중간 나이가 되었다. 50대가 아직 되지 않았을 부교역자들의 미래는 현재 담임 목회자나 전임 사역자들의 뒤를 지탱해주는 그야말로 부목(副木)의 역할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수적 열세에 놓인 부교역자들은 두 가지 노선을 택할 수 있다. 윗세대에 헌신하여 다음 자리를 보장받던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선교적 삶을 찾든지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전자는 매우 소수만 가능한 노선이다. 출신배경과 뒷배가 있어야 밀어주고 당겨줄 것인데,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목회환경을 조성하거나 아예 다른 땅에서 다른 일을 하려 한다.
신학교에서 예전과 다른 MZ 세대 신학생들을 접하며, '꼰대 선생'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목회자 후보생이 반드시 갖춰야 할 품위와 품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이전 세대와 다른 것, 아니 우수한 점이 많다.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활동에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위계적인 문화가 싫어서 또 경쟁의 기회가 공정하지 못한 것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교역자들은 적절하지 못한 사례비, 불공정한 청빙 절차, 교역자 간 위계적 관계 등이 불만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목회가 아니라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목회를 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그건 또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자신들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와 공정한 청빙 기회, 그리고 상호존중의 관계가 가능하다면 교회를 벗어나고 싶은 부교역자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정통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은 세금을 내고 있다. 이는 교역의 봉사와 섬김도 공공의 기준에 부합하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직업을 '소명'으로 간주한 칼뱅신학의 영향 아래 있어서 인식의 전환이 쉽지는 않겠으나, 이미 30~40대 부교역자들에게 교역은 생존에 필요한 일터이고 또 교회가 지원하는 사례비로는 오늘 한국사회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임을 이해해야 한다.
소명감이 부족하다며 그들만 탓할 수는 없다. 우선 부교역자들이 부당한 대우나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지 않도록 감시제도나 교역근로표준약관을 마련해봄 직하다.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는 이들을 지원할 제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해외선교사를 훈련하듯,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들을 지원하듯, 교회 밖에서 선교적 삶을 살도록 훈련하여 파송하는 제도적 절차와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다.
성석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