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떼는말이야 ] ④ 증경총회장 김순권 목사
김순권 목사
2024년 02월 21일(수)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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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종군 1년 2개월을 마치고 귀국하여 보직을 받아 육군본부 군종감실 교육장교로 만 4년을 복무했다. 1970년 6월부터 1974년 7월까지였다. 특히 교육장교는 미8군 종교수양관에서 군종장교를 비롯한 기독 장교와 더불어 전군 군종병들의 수련회를 개최하는 미8군 연락장교 역할도 겸하였다. 그래서 매달 한두 차례 두 주간은 한남동에 위치한 미8군 종교수양관으로 출근을 하였다. 이 업무를 맡게 된 것은 월남(베트남)에서 미공군 군목들과 함께 대민업무를 하면서 영어 회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승승장구 진급과 미국 위탁교육
전방 12사단 52연대에서 월남 맹호부대로 파병되면서 군목으로 자부심을 갖고 군종감까지 꿈을 가지고 미8군과의 연락업무도 열심히 하던 중 진급도 빠르게 한 것이다. 처음 중위로 임관한 후 만 2년 만에 대위로 진급하였고 대위에서 소령 진급도 육군본부 근무 중 3년 만에 진급을 하였다. 소령 진급 2년 차일 때 더 큰 꿈을 가지고 사단 참모 경력을 쌓기 위해 청평 현리에 있는 수도기계화사단(맹호부대) 군종참모로 부임하여 만 1년을 복무하고 국방부 군위탁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컬럼비아 선교대학원 석사코스를 위하여 1975년 8월에 도미하게 된 것이다. 1년 코스는 몇 차례 있었지만 석사학위를 위한 2년 정기 유학은 군종장교로서는 처음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육군사관학교 교수요원 3명과 함께 출국한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동남부에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수도 컬럼비아에 있는 학교에서 만 2년 공부를 마치고 1977년 5월에 졸업을 하고 아울러 3개월은 이스라엘로 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지고고학 연구원에서 성서지리와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미국 학교로 다시 갔다가 그해 9월 귀국을 하였다. 미국 학교에서 쓴 논문은 '한국 군대의 선교 다이나믹스 연구'였다. 특히 미국에서 귀국하기 전 육군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는 혜택을 받고 귀국한 것이다. 그때 내 나이 만 36세였다. 군목으로는 꿈꾸는 대로 국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귀국하여 보직받은 곳은 육군 제3사관학교 군종참모였다.
#사관생도 102명을 위한 '그룹제자운동'
3사관학교에 부임하자마자 펼친 군종활동은 미국 공부 중 쓴 논문대로 그룹 다이나믹스로 "제자화운동"이었다. 생도 1500명 중에서 기독교를 선택한 생도가 900명이었다. 충성당 교회의 예배는 2부로 나누어 예배를 드렸다. 그들 중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외박의 혜택을 제자화운동에 헌신할 생도를 모집하였는데 102명이 지원을 하였다. 나는 그들을 집중하여 2년 동안 지도하였다. 특히 제3사관학교 제15기, 16기, 17기가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소위로 임관되어 전후방 각 부대 소대장으로서 부하 장병들을 군대의 제자처럼 지휘통솔하여 모범이 되었고 그들 중에는 다시 고려대를 비롯한 몇 개 대학으로 위탁되어 더 공부를 하였다. 그들 중에는 신학대학원에 편입학하여 목사가 된 장교도 몇 사람 있다. 특히 미국 시카고에 가서 목회하는 서창환 목사이다.
#제3땅굴과 접한 제1군단에서의 '아쉬움'
제3사관학교에서 1979년 9월 서부전선 제1군단 군종참모로 부임하였다. 제3땅굴을 비롯하여 서울 수도권을 지키는 귀중한 부대였다. 예하 4개의 사단이 있는 각 부대를 순회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던 중 우연히 경천교회의 부름을 받고 너무 쉽게 부임을 하였다. 처음엔 몰랐으나 3개월을 지나면서 너무너무 아쉬웠다. 나의 부임을 위해 금식기도한다는 말씀에 그만 응했던 것이다.
군 복음화는 정말 중요하다. 전후방에서 뛰고 있는 군목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주 많이 격려하며 후원했으면 한다.
김순권 목사 /증경총회장·대한성서공회 이사장
#승승장구 진급과 미국 위탁교육
전방 12사단 52연대에서 월남 맹호부대로 파병되면서 군목으로 자부심을 갖고 군종감까지 꿈을 가지고 미8군과의 연락업무도 열심히 하던 중 진급도 빠르게 한 것이다. 처음 중위로 임관한 후 만 2년 만에 대위로 진급하였고 대위에서 소령 진급도 육군본부 근무 중 3년 만에 진급을 하였다. 소령 진급 2년 차일 때 더 큰 꿈을 가지고 사단 참모 경력을 쌓기 위해 청평 현리에 있는 수도기계화사단(맹호부대) 군종참모로 부임하여 만 1년을 복무하고 국방부 군위탁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컬럼비아 선교대학원 석사코스를 위하여 1975년 8월에 도미하게 된 것이다. 1년 코스는 몇 차례 있었지만 석사학위를 위한 2년 정기 유학은 군종장교로서는 처음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육군사관학교 교수요원 3명과 함께 출국한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동남부에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수도 컬럼비아에 있는 학교에서 만 2년 공부를 마치고 1977년 5월에 졸업을 하고 아울러 3개월은 이스라엘로 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지고고학 연구원에서 성서지리와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미국 학교로 다시 갔다가 그해 9월 귀국을 하였다. 미국 학교에서 쓴 논문은 '한국 군대의 선교 다이나믹스 연구'였다. 특히 미국에서 귀국하기 전 육군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는 혜택을 받고 귀국한 것이다. 그때 내 나이 만 36세였다. 군목으로는 꿈꾸는 대로 국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귀국하여 보직받은 곳은 육군 제3사관학교 군종참모였다.
#사관생도 102명을 위한 '그룹제자운동'
3사관학교에 부임하자마자 펼친 군종활동은 미국 공부 중 쓴 논문대로 그룹 다이나믹스로 "제자화운동"이었다. 생도 1500명 중에서 기독교를 선택한 생도가 900명이었다. 충성당 교회의 예배는 2부로 나누어 예배를 드렸다. 그들 중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외박의 혜택을 제자화운동에 헌신할 생도를 모집하였는데 102명이 지원을 하였다. 나는 그들을 집중하여 2년 동안 지도하였다. 특히 제3사관학교 제15기, 16기, 17기가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소위로 임관되어 전후방 각 부대 소대장으로서 부하 장병들을 군대의 제자처럼 지휘통솔하여 모범이 되었고 그들 중에는 다시 고려대를 비롯한 몇 개 대학으로 위탁되어 더 공부를 하였다. 그들 중에는 신학대학원에 편입학하여 목사가 된 장교도 몇 사람 있다. 특히 미국 시카고에 가서 목회하는 서창환 목사이다.
#제3땅굴과 접한 제1군단에서의 '아쉬움'
제3사관학교에서 1979년 9월 서부전선 제1군단 군종참모로 부임하였다. 제3땅굴을 비롯하여 서울 수도권을 지키는 귀중한 부대였다. 예하 4개의 사단이 있는 각 부대를 순회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던 중 우연히 경천교회의 부름을 받고 너무 쉽게 부임을 하였다. 처음엔 몰랐으나 3개월을 지나면서 너무너무 아쉬웠다. 나의 부임을 위해 금식기도한다는 말씀에 그만 응했던 것이다.
군 복음화는 정말 중요하다. 전후방에서 뛰고 있는 군목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주 많이 격려하며 후원했으면 한다.
김순권 목사 /증경총회장·대한성서공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