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차에 사랑을 싣고 노숙인과 함께 걸어요"

"'따'뜻한 '밥'차에 사랑을 싣고 노숙인과 함께 걸어요"

[ 아름다운세상 ] 지역 교회들과 함께 노숙인 섬기는 '따밥 처치'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4년 04월 25일(목) 05:08
분당남부교회 교우들은 이날 노숙인 100여명에게 도시락을 전했다.
노숙인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정진애 목사.
도시락을 전하는 봉사자.
봉사에 나서기 전 예배를 드리는 모습.
노숙인들에게 전할 도시락에 밥을 담는 노숙인의 손길.
 
모락모락 갓 지은 뜨끈한 쌀밥에 고기를 듬뿍 넣은 짜장소스를 담은 '따'뜻한 '밥'한끼가 삶에 지친 우리네 이웃들의 손으로 전해졌다.
어쩌면 가장 흔한 말, 그래서 또 가장 간절하고 따뜻한 한 마디.
"밥 먹었어요? '따밥'드세요"

주일 오후 경기도 성남과 분당 일대. 언제나처럼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노란 밥차에서는 음식 장만으로 분주하고, 봉사자들은 거리와 벤치에 몸을 누인 노숙인들을 찾아 도시락을 나눈다.
"어르신! 오늘은 짜장밥이에요! 꼭꼭 씹어서 맛있게 드세요."
따밥 소식을 익히 알고 있는 노숙인들은 가방을 들고 정해진 장소로 나와 도시락을 받아간다.
"오늘도 맛있는 양식을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에 봉사자들도 "우리도 감사합니다"로 화답했다.

매주 따밥을 찾아오는 '그분들'이 보이지 않자, 봉사자들의 걱정이 한 보따리로 쏟아진다.
"술을 너무 드시던데 몸이 안좋으신 걸까요?" "고혈압 때문에 쓰러지신 거 아닐까요?"
도시락을 모두 나눈 후에도 한참이나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따밥'은 '따뜻한 밥차'를 줄인 말이다. 지역의 노숙인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매 주 한끼의 식사를 무료로 나누는 따밥처치(정진애 목사 시무)의 사역이다. 따밥처치는 주일에는 따밥을 나누고 매주 금요일 심방사역으로 노숙인들의 형편을 살핀다.

따밥사역은 하모니성음교회, 분당남부교회, 이매신성교회, 강남동산교회, 동문교회가 매주 돌아가면서 100인분이 넘는 식사와 물품을 준비해 성남시 야탑과 모란, 신흥지역의 노숙인들을 찾는다. 5개의 연합교회는 음식 재료부터 손질, 요리, 포장, 현장나눔까지 모두 맡아 진행한다.

이날은 분당남부교회(정진영 목사 시무) 교인들이 100인분의 짜장소스를 마련해 '따밥'을 전했다. 짜장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각종 야채와 돼지고기를 정성껏 볶아냈다. 교인 30여 명과 SNS 등을 통해 모인 '자원봉사자'들이 교회에 모여 밥을 푸고 짜장을 담아 100인 분의 도시락을 각 지역별로 분류했다. 김치와 밑반찬, 두통약과 소화제 등 상비약까지 야무지게 챙겨 현장으로 '출동'!

"장로님은 신흥역으로 가시고 집사님은 텐트촌으로 가시죠. 목사님 우리는 모란시장 쪽으로 갈까요? 다들 도시락 챙기셨죠!"
스태프의 지휘에 맞춰 봉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이동한다. 봉사자들은 도시락과 나누며 한 주의 안부를 묻는다. "세숫비누가 필요하다"는 노숙인의 요청에 열심히 메모하는 봉사자는 "목사님께 말씀드려서 심방할 때 드리도록 할께요"라고 약속했다.

남부교회 교우는 "처음에는 노숙인들 특유의 공격성과 냄새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기 두려웠는데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실 때마다 편견에 사로잡혀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고등학생인 온유 군은 "친구가 주일마다 봉사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같이 가자고 해서 오늘 처음 왔는데 다음에도 또 오겠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하루였다"며 감동을 나눴다.

분당남부교회 정진영 목사는 "교우들이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따밥사역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길 바란다"면서 "우리교회와 교우들이 따밥사역에 격려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협력하겠다"며 따밥사역에 힘을 실었다.

따밥은 지난 2021년 12월 25일 성탄절 성남시 야탑역 광장에서 16명의 노숙인들에게 김밥을 나누는 봉사가 계기가 됐다. 정진애 목사는 신대원 시절 '교회 밖 현장실천'으로 서울역 쪽방촌에서 처음 노숙인 사역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후 부목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노숙인들을 위해 지역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교우들과 함께 역 앞에서 김밥을 나누는 봉사를 이어갔다.

"노숙인 사역에도, 교회 개척에도 뜻이 없었다"는 정 목사는 우연한 기회에 '총회 선교형 교회 개척사례 및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했고, 우수상을 받으면서 5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 상금을 노숙인 사역에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따밥을 비영리단체로 등록했고, 지역교회와 기업의 후원으로 밥차와 사무실까지 얻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사역을 시작했다"고 했다.

정 목사와 스태프들은 노숙인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역 사회 내에서 사진전과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전개하기도 한다.

사실 따밥처치는 따밥사역을 진행하면서 노숙인들의 요청으로 지난해 1월 창립예배를 드렸다. '예배'와 '전도'에 대한 부담이 없이 '따밥'을 나누는데 집중했는데 노숙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하냐?"고 먼저 물어온 것이다. 노숙인 3명과 함께 예배를 드린 이날, 작은 흐느낌이 조용하게 들려왔다. '따밥'을 통해 이들에게 전해진 그리스도의 사랑은 얼마나 따뜻할까? 예배에 참석한 노숙인들은 "도움을 받는 것도 감사하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면서 도시락 포장에 힘을 보탰다.

따밥의 핵심가치는 '함께'와 '존중'이다. "인생의 길을 함께 걷다가 넘어지면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면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정 목사는 "소외된 이웃인 노숙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은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라면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노숙인을 섬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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