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땅 밟은 사할린 동포의 눈물 닦는다"

"고국 땅 밟은 사할린 동포의 눈물 닦는다"

[ 기획 ] 광복 70주년 지내는 실로암비젼교회의 동포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5년 10월 28일(수) 12:04
   
 

【부산=표현모 기자】부산시 기장군 정관면 모전1길에 위치한 실로암비젼교회(고현광 목사 시무)의 수요기도회.
 
나자, 타냐, 아나톨리, 알야, 로자 등의 이름을 가진 교인들이 7시 30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불편한 몸을 움직이며 예배당 안으로 들어온다.
 
"즈드라스뜨부이쩨~!", "쁘리벳" 고현광 목사가 반갑게 웃으며, 교인들의 손을 잡는다. 이들은 정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 고 목사의 스킨십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간혹 한 사람이라도 잊고 손잡는 것을 까먹는 날이면 굉장히 섭섭해 하거나 삐치기도 한다고.
 
성도들의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 행색이 초라하다. 다행인 것은 이들의 담임목사 행색 또한 초라하기는 매한가지여서 성도들은 자신들의 외양을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 없다.
 
실로암비젼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사할린 동포들이다. 사할린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강제점령했던 지역으로 일제시대 석탄 광산 강제 노역을 위해 조선인을 집단으로 강제 이주시킨 지역이다. 러시아인들이 귀양을 가는 곳일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던 사할린에서 우리 동포들은 온갖 차별을 받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이 징용자들 중에는 2차 대전 종전 후 한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남은 이들이 많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1994년 한국과 일본 정부는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시범사업에 의해 처음 합의되어 1996년 사할린 동포 영주 귀국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현재 3000여 명이 귀국해 인천, 안산, 화성 등에 살고 있으며 부산에는 2009년부터 정착이 시작했다.
 
현재 실로암비젼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대부분 전후 사할린에서 태어난 2세대들로 현재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 내 국민임대 아파트에 모여 살고 있다.
 
1세대들은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다고 설레어 했고, 2세들은 사할린에서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설레어 했다. 그러나 강제징용 후 60여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며 녹록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생계비가 모자라 러시아에 있는 자녀에게 용돈을 받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들이 한달에 손에 쥐는 돈은 2인 기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금액과 사할린 특별 생계비 등 대략 85만원 선이다. 이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다. 일을 할 경우에는 소득만큼 금액을 삭감하기 때문이다.
 
가난 이외에도 타문화에서 살던 이들의 한국 적응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경험과 가난과 척박한 땅에서 소수자로서 살아남아야 했던 절박함 때문에 이들은 생존을 위한 집착이 강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들은 한국에 와서 너무 이기적이고, 물질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무뚝뚝하고 냉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이들은 한국 노인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차별을 겪는 것이다. 경로당 등 공공의 공간에 갈 수 없는 이들은 함께 모여 교제할 장소가 없다. 그나마 이들은 실로암비젼교회가 있어 25가정 40명 정도의 교인들이 매일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고, 교제도 나눈다.
 
여성 68세, 남자 74세의 평균연령인 사할린동포들은 고령으로 인해 크고 작은 질병들을 많이 안고 산다.
 
74세의 윤영근 집사는 "전에는 러시아가 살기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여기가 더 살기 좋다"며 "그러나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아 물가가 비싼 부산에서 살기는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윤 집사 가정의 모든 수입은 93만원으로 임대료 15만원을 내고, 관리비 등을 제하면 50만원이 남는데 그 돈으로 한달을 살아내야 한다.
 
박순례 집사는 "간에 돌이 박혀 간의 반을 잘랐는데 특진료만 550만원이 나왔었다"며 "대책이 없어서 고 목사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이 매일 새벽기도 끝나면 교회를 찾아가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한국에 온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픈 이들을 바라보는 고현광 목사 부부는 안타깝기만 하다.
 
고 목사는 "임용례 집사님의 경우 당뇨가 심해 가끔 정신도 오락가락 하시는데 혼자 사셔서 불안하다"며 "한번은 주일날 결석하시는 분이 아닌데 연락도 안돼 우리 사모가 가보니 문이 잠겨있어 열쇠공 불러서 문을 따고 들어가니 정신이 몽롱해서 쓰러져 있었다"고 일화를 말한다. 교인 중 사할린에서 가장 먼저 온 김순애 권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와서 한국말을 전혀 못했다"며 "우리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회에서 한글 선생님 모셔와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도움을 너무 많이 주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힘든 게 뭔가" 질문을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돈"이라고 말한다. "돈 없는 것 다음으로 어려운 게 뭐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수줍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사람이 우리를 잘 안받아주는 것 같아요. 한국말이 서툴러 우리끼리는 러시아말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모일 때마다 눈치를 보게 돼요. 그래서 매일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올 때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쌓인 아픔을 다 토하고 가는 것 같아요."

 

# 목사님은 우리의 '유일한' 버팀목
외로운 이들의 쉼터가 되는 실로암비젼교회 고현광 목사

실로암비젼교회 교인들의 특징은 새벽예배나 수요기도회에도 거의 전교인들이 참석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친한 이들끼리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이면서, 자신들을 걱정해주고 도와주는 고현광 목사와 부인 김경자 씨가 있기 때문이다.

   
 


 
예배 중 주보를 흘깃 보았다. 광고의 내용이 특이하다.
 
23일 김삼진 집사 가정 사할린에서 귀국(노포동터미널 오후 5시), 24일 김내지아 해운대 백병원 (7시45분), 조대용 원자력병원(1시20분), 25일 손다세 예람한의원, 기장삼성안과(10시)….
 
일주일치의 교인들의 병원 방문 시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 주보의 광고란에 실린 일정은 고스란히 고 목사의 사역 일정이 된다. 사할린 동포 교인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크고 작은 병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다가 이들은 한국말도 잘 못하고,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병원을 다닐 때 교통비 조차 아까워하고 있는 상황. 몸도 불편하고, 언어도 안되고 돈도 없는 이들을 위해 고 목사는 매일 이들을 병원에 데려다 준다. 외래진료, 입원, 검사, 건강검진, 수술, 긴급후송 등 병원에 관련된 일이 일주일 스케줄의 90% 이상이다.
 
그 외에 출입국 사무실, 군청, 면사무소, 보건소에서 종이 한장이라도 날아오면 교인들은 쪼르르 고 목사에게 달려온다. 관공서 행정에 관련된 업무도 고스란히 고 목사의 일이 된다. 여름철 고향방문을 위해 사할린에 출국할 때, 손자 손녀들 한국 방문할 때, 손주들 한국 관광할 때도 고 목사는 운전대를 잡는다. 사할린 동포들은 고 목사가 버틸 기둥이고 최후의 보루다. 어려운 수술을 마치고 돈이 없을 때 고 목사를 찾는다. 자신들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목사도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면 고 목사는 막무가내로 하나님께 꿇어앉아 기도로 떼를 쓴다. 한번은 5000만원이 넘는 수술비가 없다는 동포를 위해 무작정 병원 원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4시간을 울어 치료비를 경감받기도 했다.
 
사할린 동포들에게 고 목사는 그야말로 '버틸 기둥'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 목사도 지난 부활절 플래카드를 걸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쳐서 복대를 하고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있다. 교회의 월세가 몇개월씩 밀리는 것에도 이력이 났고, 자신의 아파트 관리비까지 못내 허덕이기도 한다.
 
고 목사는 "교인들은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인데 제가 부실하고, 교회 재정까지 악화되어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가 사할린 동포의 아픔을 기억하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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