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의 성령 강림(행 8:4~24)

사마리아의 성령 강림(행 8:4~24)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6

이승호 교수
2022년 09월 29일(목) 17:04
사도행전의 두 번째 단락(6:8~8:40)에는 1:8의 구도에 따라 복음이 예루살렘의 장벽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전파되는 내용이 서술된다. 특히 교회가 선출한 일곱 대표(6:1~6) 중에서 스데반의 활동(7:8~53)과 순교(7:54~60),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8:4~13) 및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8:27~40)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데반의 순교는 헛되지 않았다! 성령은 그의 순교를 복음이 그때까지 머물러 있던 경계선을 넘는 결정적인 밑거름으로 사용하셨다. 이처럼 복음의 확장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성령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일곱 대표 중 한 사람인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다(8:4~13). 사마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지만 주전 722년 아시리아에 정복되었고 외국인 이주 정책으로 인해 그 거주민은 순수 혈통을 잃어버려 이른바 혼혈 민족으로 간주되었다(눅 9:51~56; 요 4:9 참조).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일한 예배 장소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요 4:20), 대부분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공유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아(=그리스도)로 선포하는 것으로서 충분했다(5절; 참조 12절).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6절)는 진술은 성령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사마리아인이 성령으로 충만한 빌립의 선포와 표적(표적은 선포의 진리성을 입증, 2:43; 4:33 참조)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다(행 8:12~13).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말은 빌립의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의 선교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대표로 보낸다(14절). 베드로와 요한의 파송은 사마리아 선교의 공적인 인준을 의미한다. 두 사도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을 중재해 주는 역할을 한다(15~17절). 세례와 성령 받음이 분리해서 나타나는 일은 특별한 경우이다(2:38; 19:1~6 참조). 신약성경에서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기록은 여기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이 본문을 토대로 일반세례와 성령세례를 구분하여 선-중생 후-성령세례의 도식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누가의 관점에서 사마리아 선교는 초기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에 속한다. 사마리아는 지리적으로 예루살렘 밖에 있으며 종교적으로도 유대교 밖에 머물러 있는 첫 번째 사례에 속한다. 따라서 사마리아 선교가 이단적인 운동이 아니라(9~11절 참조) 성령의 뜻임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16절) 라는 말은 성령의 내리심이 "아직" 공식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최초의 성령 강림이면서 동시에 예루살렘의 성령 강림이라면 본문의 사건은 "사마리아의 성령 강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일("이방인의 성령 강림")이 나중에 이방인 고넬료의 경우에도 일어날 것이다(거기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세례를 받음). 이러한 성령 강림의 표현은 그들이 받은 성령이 오순절 날 사도들과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경험한 성령과 동일한 성령임을 입증해 준다(행 11:15; 15:8 참조).

성령을 받아야만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하였다(18~19절). 즉 성령의 능력을 일종의 마술적 기술로 여긴 나머지 돈으로 성령을 획득하고자 한 것이다. 이 사건에 근거하여 중세 시대의 성직매매를 가리켜 영어권에서는 "시모니"(Simony)라 지칭한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성령은 인간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성령의 은사나 능력은 돈으로 매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20절).

"이 도(=말씀)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21절)는 말은 시몬의 동기가 너무나 불순하므로(23절) 시몬을 공동체에서 공식적으로 축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22절)는 진술과 모순되지 않는다. 베드로의 요구를 따르면 시몬은 다시 그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일의 분깃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몬의 대답(24절)은 그 자체로는 참된 회개의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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