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서 열정으로(행 9:1~19)

열정에서 열정으로(행 9:1~19)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7

이승호 교수
2022년 10월 13일(목) 05:59
열정에서 열정으로(행 9:1~19)

행 1:8의 구도에 따라 복음이 예루살렘(2:1~8:3)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8:4~40)까지 확장된다. 이제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를 눈앞에 두고 있다. 본문은 이방인 선교에 장차 중요하게 쓰임 받을 바울의 회심을 서술한다. 이 바울의 회심은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전해지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초기 교회의 역사를 매우 간결하게 서술하는 누가가 바울의 회심에 대해 무려 세 번이나 서술하고 있다는 점(9:1~19; 22:3~21; 26:4~23) 역시 그 중요성을 확인하게 해준다.

1.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울의 만남(9:1~9)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처음에 박해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7:58~59, 8:1, 3). "여전히"라는 말은 회심 직전에도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증오와 적대감이 전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1절). 이러한 박해자 바울의 모습을 볼 때 다메섹 체험은 인간의 어떤 계획이나 준비와는 상관없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의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과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치고(행 26:13 참조) 소리가 나는 것으로 시작된다(3절). 빛이 하나님 현현의 상징이라면(출 19:16; 삼하 17:24; 눅 9:29; 17:24 참조), 소리는 하나님 계시의 특징이다(출 3:3~6; 사 6:8; 눅 3:22; 9:35 참조). 4절에 나오는 주의 음성은 주님 자신과 그리스도인을 동일시한다(눅 10:16 참조). 그러나 바울은 이 말을 즉각적으로 알아듣지 못한다. 자신이 박해한 대상은 사람들이었지 어떤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여"라는 호칭(5절)은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이기보다는 신적 존재에 대한 공손한 호칭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주님의 대답을 듣고 비로소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박해하였으나 그것이 곧 교회의 배후에 계시는 예수를 박해한 것임을 알게 된다. 아마도 이때 바울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 틀림없다. 바울과 그리스도의 첫 만남의 결과는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못 보게 된 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신비체험의 결과라면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은 그의 의지적인 행동으로 그의 회심과 내적인 변화를 암시한다(11절).

2. 아나니아와 바울의 만남(9:10~19)

바울의 다메섹 체험 배후에 주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처럼 그 이후의 과정 역시 모두 주님의 주도로 진행된다. 아나니아는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으로(22:12) 다메섹 교회의 교인이었던 것 같다(행 2:9-10 참조). 바울이 길리기아 지방의 주도인 다소 출신임이 처음으로 나타난다(11절). 그의 헬라적 배경은 이후 그의 이방인 선교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예, 이방인에 대한 개방적 태도, 대도시 중심의 선교 등).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11절)는 말은 바울 회심의 진실성을 표현한다. 아나니아의 주저함은 바울의 회심이 얼마나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는지를 확인해준다(13~14절).

바울의 소명은 아나니아를 통해 계시의 형태로 전달된다(15~16절; 참조 갈 1:15-16). 계시의 내용은 이 단락의 주제로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 선교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일찍부터 그를 선택하고 준비하셨음을 강조한다("나의 택한 그릇"). 그러나 바울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16절).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아간다. "형제"라는 표현은 동료 교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교회의 대원수가 형제로 받아들여진다. "성령으로 충만하게"란 표현은 바울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았다는 점을 암시한다(17절).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바울은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다(18절). 이는 바울에게 새로운 시각(하나님/예수/이방인/자신에 대해)이 열렸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이유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그의 열정(열심) 때문이었다(8:3; 갈 1:13~14; 빌 3:6 참조).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의 열정은 잘못된 열정이었다. 신앙에 있어서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목표)이다. 그의 잘못된 열정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올바른 열정으로 변화되고 그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증인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