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회심(행 10:1~16)

베드로의 회심(행 10:1~16)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8

이승호 교수
2022년 10월 19일(수) 06:36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선교는 안디옥에서 시작되어(11:20~21) 13장부터는 바나바와 바울의 주도 아래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진행된다.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기 전 하나님은 두 가지 일을 예비하시는데 바울의 회심(9:1~19)과 베드로의 회심(10:1~48)이 그것이다. 바울의 회심을 통해서 이방인 선교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인물을 준비하셨다면 베드로의 회심을 통해서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신학적 바탕을 마련하신다. 베드로의 회심은 이방인을 포함한 보편적인 구원 이해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11:1~18).



1. 고넬료의 환상(10:1~8)

가이사랴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는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관장하고 있는 총독의 주재지이며 로마군 수비대의 주둔지였다(1절). 고넬료는 이 수비대의 백부장으로 아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공식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호의를 가지고 회당에 참석한 이방인) 중 한 사람으로 보인다(13:16, 26; 16:14; 17:4, 17; 18:7 참조). 기도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구제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를 말한다면 그는 균형 잡힌 유대교의 경건을 갖춘 인물이었다(2, 4절; 눅 7:2~10 참조).

기도시간(제9시는 오후 3시쯤으로 예루살렘 성정의 기도시간)에 고넬료는 환상을 보는데(3절)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것이다(5절). 바울과 아나니아의 만남(9:10~19)과 마찬가지로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에도 이를 주선하기 위해 배후에서 주체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성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지시에 그대로 복종한다(7~8절).



2. 베드로의 환상(10:9~16)

고넬료처럼 베드로 역시 기도하는 동안에 환상을 체험한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라는 말은 환상의 내용을 예비한다(10절). 베드로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본다. "하늘이 열리며"라는 표현은 환상과 계시의 기원이 하나님이심을 상징한다(11절). 그 안에는 온갖 짐승들, 즉 네 발 가진 짐승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이 있었다(창 6:20; 롬 1:23 참조). "각종"(pas, "모든")이라는 말은 유대교의 음식 규정에 따라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섞여 있음을 암시한다(12절; 레 11장 참조). 따라서 "잡아 먹어라"는 음성은 음식 규정에 관한 정결례를 따지지 말고 먹으라는 의미이다(13절). 유대교의 율법 전통으로 볼 때 베드로가 그 요구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14절). 환상 속의 부정한 짐승은 이방인을 상징(10:28 참조)하는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 먹어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이방인들을 배척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베드로의 거절은 여전히 그가 이방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5절에 나오는 두 번째 음성은 이러한 베드로의 거부에 대한 일침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이방인)을 깨끗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것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다. 이미 예수가 음식의 정결법을 과감하게 정정한 것처럼(막 7:15~23)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 뜻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베드로는 그가 속해 있는 종교적 전통과 고정관념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까지도 거절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드러난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는 것은 베드로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말해 준다(16절).

베드로의 신념이 당시로는 유대민족의 절대적인 신앙전통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전통이나 신학은 결코 진리 자체가 아니라 한시적인 가치와 의미만을 가지기에 그것을 절대화하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회심 전의 바울 참조). 참된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가 변화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신념이나 확신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내려놓을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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