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체이신 하나님(행 13:16~41)

역사의 주체이신 하나님(행 13:16~41)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1

이승호 교수
2022년 11월 10일(목) 08:49
사도행전의 내용은 13장을 기점으로 대전환을 이룬다. 이전까지는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사도들(특히 베드로)과 일곱 지도자들(특히 스데반과 빌립)의 사역을 기술했다면, 이제부터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이방인 선교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행 13:4~14:28에는 안디옥교회로부터 파송된 바나바와 바울이 오늘날의 튀르키예(터키) 남부지방(대도시 중심)에 복음을 전하는 이른바 "1차 선교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본문은 바울이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하는 내용이다(13:14). 글을 아는 유대인 남자라면 누구나 회당장의 주도로 성경을 해석할 권한이 주어졌으므로(눅 4:16~21 참조)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얻는다. 이 설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첫 번째 공식 설교로 예수의 나사렛 취임설교(눅 4:16~27)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행 2:14~36)에 비견될 수 있다.

회당모임에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불리는 이방인도 참석했다(16절). 그들은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회당예배에 참여하고 모세 율법을 부분적으로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 중 대부분은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바울의 설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서론으로 구약 역사를 부분적으로 개관하고(17~22절), 본론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 즉 복음서의 역사를 개괄한 후(23~37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와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선언으로 결론을 내린다(38~41절).

설교를 구약의 역사 개관으로 시작하는 것은 화자와 유대인 청자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사도행전 선교 설교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일종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2장의 베드로 설교와 7장의 스데반의 설교 참조). 바울은 구약을 개관하는 모든 문장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표현함으로써(17~22절) 모든 구원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그분의 뜻을 이루는 역사의 도구가 됨을 분명히 한다(특히 22절; 36절 참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관은 다윗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이 구주 예수가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23절). 따라서 예수야말로 역사의 초점이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이다.

그러나 바울 설교의 핵심은 예수를 통하여 유대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26절). 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사건이 약속과 성취의 구조로 기술된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정죄한 일도 구약 예언자들의 말을 이루는 것이고(27절), 빌라도의 유죄 판결도, 십자가 죽음도, 매장도,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한 것이다(29절).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신 일(31절)도, 부활 후에 여러 사람에게 나타난 일(32절)도 모두 예언과 성취의 관점에서 기술된다(33~37절 참조).

끝으로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효과에 대해 말한다.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39절). 여기에서 처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신칭의)의 주제가 나타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반면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박국의 예언(1:5)대로 결국 멸망할 것이다(40~41절).

누가에 의하면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역사란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무대이다. 예수를 통한 구원의 역사(이방인을 포함하는)는 하나님이 구약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일의 성취이다. 이러한 약속과 성취의 구조는 하나님의 주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도 증언해준다. 인간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강한 확신은 성도들이 오늘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끼친다. 오늘의 삶을 시간의 관점이 아니라 영원의 관점에서, 땅의 관점이 아니라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고난과 역경의 현실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