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자기 정체성(행 17:22-31)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행 17:22-31)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3

이승호 교수
2022년 11월 24일(목) 06:29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에서 교회가 율법(할례)과 무관한 보편적 선교를 공인한 후 바울의 이방 선교는 더욱더 탄력을 받고 광범위하게 진행된다. 이른바 2차 선교여행을 통해 바울은 오늘날 유럽 대륙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다. 그는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 아가야 지방의 아덴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한다. 당시 아덴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세계의 정신적,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그 명성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바울의 아덴 사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아레오바고 설교"이다. 이 설교는 회당 밖의 순수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가장 대표적인 설교이며(행 14:15~17 참조) 무엇보다 사도행전에서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설교의 서두인 22b~23절에서 바울은 구약 지식을 전제로 한 회당 설교와는 달리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지식(神智識)을 통해 청중과의 접촉점을 찾는다. 바울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을 언급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아덴 사람들의 높은 종교심을 긍정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덴 사람의 무지함을 폭로하기 위함이다(23절). 24~25절은 설교의 주제로서 그릇된 신관에 기초한 이방 종교의 허구성을 고발하는 한편 참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해 준다. 첫째,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제한될 수 없다(왕상 8:27 참조). 둘째,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결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다. 셋째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사제와 같은 어떤 중보자의 중재 없이 "친히" 내려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고대의 이방 종교가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던 세 가지 요소, 즉 신전, 제물, 사제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26~29절에서 바울은 올바른 신관을 위한 논증을 제시한다. 특히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그리고 가까이 계심이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신 초월자이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으로부터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계신 분이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청중들이 알만한 그레데(크레타) 섬의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ennides, BC 600년경)의 시 Cretica("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와 스토아 학파 아라투스(Aratus, BC 315~240년)의 시 Phaenomena("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를 인용한다. 바울은 이러한 참된 하나님 인식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우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29절).

30~31절에서 바울은 복음의 핵심으로 돌아가 청중의 결단을 촉구한다. 이전의 무지의 시대와는 달리 하나님은 이제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신다. 이러한 회개 요청은 종말론적인 심판 경고를 통해 긴급해지고 강화되는데, 심판의 증거로 예수의 부활을 제시한다(살전 1:9~10 참조). 이 예수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셔서 주와 심판자로 삼으신 분이다(행 10:42). 그러므로 아덴 사람들은 거짓된 신들과 그릇된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서서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마땅하다.

아레오바고 설교는 이방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삶의 공간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의식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정한 제의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매일 매일의 삶 자체를 예배 행위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롬 12:1 참조).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서로를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형제자매로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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