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의 한 가운데서(행 27:9~26)

풍랑의 한 가운데서(행 27:9~26)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5

이승호 교수
2022년 12월 08일(목) 06:46
긴 재판과정(21:27~26:32)이 끝나고 마침내 바울은 대망의 로마로 향하게 된다(27:1). 바울의 체포와 재판과정은 사도행전의 1/5이나 차지할 정도로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 이처럼 누가가 바울의 재판과정을 비교적 길게 서술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음이 세계의 중심인 로마로 향하게 되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그는 재판의 절차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자와 왕족 앞에서의 바울의 복음선포(9:15 참조) 및 그의 로마행의 당위성을 강조한다(23:11; 25:11~12; 26:32; 참조 19:21). 이로써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수도 로마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밝히고자 하는 누가의 전체적인 구도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나아간다(1:8 참조).

본문은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에 도달하기까지 길고 험난한 항해 과정의 일부를 담고 있다. 바울의 호송은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대(황제의 부대를 의미)의 백부장 율리오가 책임지게 된다(27:1). 9절의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의 대속죄일을 가리키며 태양력으로는 9월 말에서 10월 초에 해당한다. 당시 지중해에서의 항해는 대체로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매우 위험한 시기로 여겨졌으므로 10절에 나오는 바울의 경고는 타당한 것이었다. 바울의 경고를 무시한 결정권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이 곧 드러난다(11절). 그레데 섬으로부터 불어 닥친 강한 태풍 "유라굴로"가 배의 방향을 지중해 한가운데 쪽으로 몰아갔다(14절). 폭풍이 너무 강해서 더 이상 배의 방향을 통제할 수 없었으므로 선원들과 모든 승객은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20절).

이러한 절망의 상황 속에서 희망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었다. 그의 희망의 중심에는 풍랑 가운데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놓여 있다(사 41:10; 사 43:1~2; 마 14:27; 마 28:20 참조).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절망하여 포기하고 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사명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는다(22~26절). 하나님의 사자가 환상을 통해 바울에게 전해 준 메시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가 반드시 가이사(황제) 앞에 서야만 한다는 것이다(24절; 당위성을 나타내는 헬라어 조동사 데이[dei]에 유의). 이 말은 이미 행 23:11에서 전해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해 준다(19:21 참조). 또 다른 하나는 바울의 이러한 사명 때문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자기 목숨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도 알고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어떠한 위기 상황도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또한, 그는 언제나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사명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과 투철한 사명의식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희망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고 그와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도 바울 때문에 살아남을 것이다.

이로써 바울은 더 이상 수동적인 죄수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보여주는 영적 지도자로 나타나고 있다. 최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확고하게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단순한 믿음이 바울로 하여금 절망에 빠진 사람을 희망으로 이끄는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게 했다. 사도행전의 독자들은 본문을 통해 어떤 인간의 간계나 권력, 자연의 힘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폭풍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언제나 함께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를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을 넘어 그 고백을 얼마나 자신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