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다른 우릴 사랑해 교회 가족들에 감사"

"피부색 다른 우릴 사랑해 교회 가족들에 감사"

[ 아름다운세상 ] 나이지리아계 5남매와 순천성광교회와의 우정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3년 06월 19일(월) 10:19
5남매를 안아주고 있는 순천성광교회 김동운 목사와 교인들.
"순천에는 정말 선한 사람들이 많아요. 2011년도 순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확실히 마음의 편안함을 얻었어요. 순천성광교회와 김동운 목사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게 된 건 하나님 은혜예요."

지난 5월 28일 순천성광교회의 주일예배를 마치고 난 후 만난 P씨를 포함한 5명의 남매들은 피부만 검은 색일 뿐 말투와 사고방식은 영락 없는 한국의 청년,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국내 출생 나이지리아인들이다.



# 미등록 이주민 아동의 합법적 한국 체류 첫 번째 판결 사례



25세의 P씨는 조선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 전라도 광주의 한 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1999년 한국에서 나이지리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P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체류 기간을 연장 받지 못해 강제 출국을 당해 가족 모두가 불법 체류자 신세로 한국에 남게 됐다.

P씨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학업을 이어가며 순천성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P씨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재학시에도 예의가 바르고 선행을 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표창장을 받았다. 특히 고등학생 때는 외부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으며, 3년 개근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3개의 국가기술자격증에 합격했을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7년 4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취업했다가 당국에 적발되어 구금됐고, 이내 추방 명령을 받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 고유언어를 구사할 지도 모르는 그가 홀로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이지리아로 추방을 당할 위험에 처하자 P씨는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심한 마음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시민단체들이 나서 P씨에 대한 특별체류 허가를 요청했으나 당국에서는 답변이 없었다. 이 때 순천성광교회 교인들은 P씨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선처를 호소하며 연명으로 탄원서를 제출했다. 온 교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탄원서를 쓰는 것은 물론, 친구들의 탄원서를 모으고, P씨와 가족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결국 이러한 도움 속에서 인권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받은 P씨는 법무부 산하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강제퇴거 명령 및 보호 명령 취소 소송을 해 결국 2018년 5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적법하게 출생했다가 부모가 체류 자격을 상실함으로써 체류 자격을 잃게 된 사람에 대해 인권적·인도적·경제적 관점에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원고처럼 대한민국에서 출생해 사실상 오직 대한민국만을 지역적·사회적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을 무작정 다른 나라로 내쫓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해야 할 문명국가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법무부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한 P군을 무작정 내보내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접근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판단도 경청할 필요가 있는 점 등 여러 특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판결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처럼 자랐지만 미등록(불법 체류) 상태로 살고 있는 이주민 청소년 및 아동을 구제한 첫 번째 판결이다. 이 판결로 인해 국내 P씨와 같은 상황의 미등록 아동에 대해 '불법체류'라는 용어가 아닌 '장기체류'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장기체류 이주아동을 구제하는 제도도 생겨 수많은 이주민 아이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



#회상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기억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이 P씨 가족의 솔직한 심정이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이로 인해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기자에게도 그때의 이야기는 묻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할 정도였다.

P씨의 누나 L씨는 "저희는 당당하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려고 하는데 사실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며 "그때만 생각하면 그 당시 일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이 떠올라 괴롭다"며 기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반면, 어렸을 적 순천성광교회에 출석하며 쌓은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웃음 가득한 얼굴을 하며 말을 이었다.

"엄마의 친정이 모태신앙이예요. 타 지역에 있을 때부터 교회 다녔었어요. 순천에 와서도 당연히 교회를 찾았는데 이 교회를 출석하게 됐죠."

그러나 당시 어렸던 P씨 남매들은 몰랐다. 순천에서 다니던 작은 교회가 열악한 재정 때문에 P씨 가족을 돕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어머니와 함께 김동운 목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던 것. 이후부터 순천성광교회는 교회의 '러브뱅크'를 통해 이 가정에 필요한 생활용품 및 장학금, 생활비 일부를 지원했다.



#"그럼에도 따뜻한 환대와 도움 덕분에"



청소년 시절 반에서 일등을 할 정도로 똑똑했던 장녀 L씨가 말을 이었다.

"순천성광교회에 처음 왔을 때 다들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보통 교회가 크면 담임 목사님이 일일이 신경 써주시기 어려운데 김 목사님은 우리와 소통 해주셨어요. 동급생들도 많아서 어울려 놀면서 우리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랐어요."

대학생인 셋째 D양도 처음 교회 왔을 당시의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순천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초등 3학년 막내는 유치원생이었어요. 친구와 노는 것도 잘 못해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었는데 순천성광교회에 온 후에는 목사님과 교인들이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 사주셨어요. 연말 성탄절 행사, 교회 수련회도 열심히 참석했죠. 특히 김 목사님은 할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라요."

L씨가 중간에 또 끼어들었다.

"김동운 목사님 너무 친근하고 할아버지 같아요. 사실 우리 가족 이름 한국 이름이 아니라 어려워서 다 기억 하는 분이 별로 없는데 목사님은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불러주시고 안아주시고 하셨죠. 교회가 크고 성도도 많은데 권위적이지 않아서 저희가 정말 좋아해요."

순천성광교회의 따뜻함과 도움에 힘입어 P씨 남매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주민이라는 신분은 젊고 꿈 많은,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이들에게 큰 제약을 주고 있었다.

P씨는 "비자문제가 가장 어렵다. 한국에서 체류 조건에 부합한 일을 해야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공장이나 농장 등 흔히 말하는 3D 업종에서 일을 하거나 완전 고기술자여야만 한다"며 "대학교에 갈 때 스포츠나 예체능 같은 다른 과를 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당시에는 엄두를 낼 수도 없었고, 적성에 맞는 것을 찾을 자유도 없었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누나인 L씨도 "우리 모두 다 꿈이 다 있는데 법에서 정한 일만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이사 가는 것도 다 신고해야 한다. 하루만 늦어도 문제가 된다"며 "지금의 비자를 가지고 5년 이상 일을 하면서 재산이 6000만 원 이상이거나 연간 총소득이 8000만 원 이상 되어야 영주권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데 사실상 정말 어렵다"고 실상을 밝혔다.

김동운 목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때로는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야기 도중 얼른 당회실로 뛰어들어가더니 이내 광주에서 자취하고 있는 L씨의 손에 교통비를 쥐어주기도 했다.

"이 아이들도 귀한 생명이잖아요. 한국인과 다를게 없어요. 실제로 만나면 정말 사랑스러워요. 모두다 참 착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우리 교인들과 더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우리 교인들은 이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다 지켜봤잖아요. 어려움 겪을 때는 탄원서도 쓰고, 관계 기관에 연락하면서 협조를 구하고, 함께 힘 모아 기도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바라기는 이 아이들이 한국에서 영주권을 얻고 잘 정착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우리 교인들이 계속 기도할겁니다."

한편, P씨 가족은 얼마 있으면 광주로 이사를 간다. P씨의 직장과 남매들이 다니고 있는 대학이 광주에 있기 때문이다. "이사 가면 자주 볼 수도 없게 되는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김 목사는 "광주에 가서도 밥 잘 챙겨 먹고 가끔이라도 찾아와야 된다"며 다섯 남매를 꼭 안아주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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