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재산 기부한 일본 선교의 대모

마지막 재산 기부한 일본 선교의 대모

[ 아름다운세상 ] 시무하던 시나가와교회에 자신소유의 아파트 기증한 경혜중 목사
재일대한기독교회 1호 여성목사, 1호 여성 총회장으로 헌신적인 일본 선교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3년 10월 23일(월) 08:31
경혜중 목사와 강장식 선교사(현재 시나가와교회 담임).
지난 9월 26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여교역자안식관.

92세의 은퇴 선교사 경혜중 목사의 한치 흐트러짐이 없는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지만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짓는 그녀의 표정에서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오늘은 경 목사가 지난 1977년부터 2001년까지 25년간 사역한 목회지인 도쿄의 시나가와교회에 그녀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재산인 도쿄의 맨션(아파트)를 기증하는 날이다.

이날 기증감사예배에는 시나가와교회 담임 강장식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과 경 목사와 친자매 같은 사이인 안성은 권사(예수소망교회), 그리고 여교역자안식관에서 경 목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은퇴 여교역자들이 참석해 기쁨의 순간을 함께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겸손한 성격상 자신이 칭찬받을 일이 드러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심지어는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여교역자안식관 원장 김영미 목사, 경 목사와 친동생 같은 사이인 안성은 권사가 대변인처럼 경 목사의 상황과 마음을 대변했다.

김영미 원장은 "경 목사님이 며칠 동안 긴장하신 모습으로 이날을 기다렸다. 며칠 전 제자들이 모처럼 찾아왔는데 오늘을 준비하고 기도해야 한다며 일찍 보내실 정도였다"며 "큰 일을 앞두고 온 정신을 쏟으셨는데 오늘 기증식이 끝나니 마음이 편안해지시는 것이 눈에 보인다"라고 전했다.

이날 기증감사예배에 참석한 안성은 권사는 경 목사의 속마음을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이 아는 사람이다. 안 권사는 경 목사의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조력자의 역할을 하며 마음을 나눠왔다. 안 권사는 경 목사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언니(경혜중 목사)가 의사랑 결혼해서 호강한 줄 아는데 남편인 고 윤관병 장로님은 돈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어요. 정말 남 섬기는 일만 열심히 하신 분이예요. 경 목사님은 그 분과 결혼해서 목욕탕과 부엌도 없는 집에서 17년간 살았어요. 이번에 기증한 아파트도 윤 장로님 친구가 자신이 들어갈 아파트를 양보해서 겨우 마련한 집이거든요. 언니는 옷 한 벌 제대로 해 입은 적 없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아오신 분이예요."

이날 기증감사예배에서 설교한 강장식 목사는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처분하시면 일본의 시설 좋은 실버타운이나 요양원에서 우아하고 안락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며 기증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며 "마지막 재산까지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소식을 듣고 몸둘 바를 모르겠고, 시나가와교회 성도들이 정말 감사해하고 있다. 부디 여교역자안식관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시길 바란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날 기증예식이 끝난 후 경 목사는 누구보다도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워낙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경 목사이지만 이날 식사시간에는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1호 여성목사, 1호 여성 총회장



재일대한기독교회 제1호 여성 목사, 제1호 여성 총회장인 경혜중 목사는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1년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신사참배 문제로 경찰에 불려 다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 목사는 1958년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제일교회와 인천제일교회 전도사 겸 인성여자중고등학교 교목, 동신교회 전도사 사역을 하고, 1968년에는 장신대 여학생 기숙사 사감으로 일했다. 그러나 경 목사는 돌연 1971년 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지원으로 일본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교단 총회에 여성 목사 안수제도가 없었고, 전도사로서는 정식으로 총회 파송 선교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파송을 받은 것.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경 목사는 경도교회에서 사역을 했으며, 한국에서 유학 온 간호대 학생들과 재일대한기독교 여성회 등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1973년 42세의 나이로 일본에서 의사로 근무하던 윤관병 장로와 결혼을 했다. 유능한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 일에 열중했던 윤 장로 덕에 부부는 늘 가난했다. 경 목사 부부는 17년간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지낼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는데 남편인 윤 장로의 친구가 이들 부부의 사는 모습이 하도 딱해 보여 자신이 입주하기로 한 아파트를 양도해 20년 대출 상환을 끼고 그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한다. 이번에 기증한 아파트가 바로 이 아파트다. 이 부부가 이 아파트에 사는 동안 이들은 변변한 옷 한 벌을 산다든지, 근사한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인생을 바친 시나가와교회, 마지막 남은 것까지 기증



시나가와교회는 경 목사가 1977년부터 2001년 은퇴할 때까지 25년을 사역한 마지막 사역지다. 사역을 시작할 때 전도사 신분이었던 경 목사는 목사 고시를 보고 1983년 재일대한기독교회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야 시나가와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할 수 있었다.

경 목사는 은퇴를 앞둔 상황에서도 시나가와교회의 건축을 진행, 6층 건물로 건축해 2001년 3월 헌당식을 가졌다.

지난 2013년 더라이트미션 선교상을 수상한 경혜중 목사.
일본 땅에서 한국인의 신분으로, 여성 목회자로 많은 차별과 가난 속에서도 헌신적인 선교사역으로 일본 선교의 어머니 역할을 감당하고, 여성으로서, 목회자로서 일본 선교에 귀한 족적을 남긴 선배 선교사로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경혜중 목사. 자신의 마지막 남은 것까지 아낌없이 교회에 기증한 날에도 경 목사는 조금의 자기자랑도 없이, 멋있는 기증사도 없이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만을 하고, 오랜 숙원을 이루었다는 듯 편안한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표현모 기자
시나가와교회 시무 시절 교인들과의 나들이에서 남편 윤관병 장로와 함께 한 경혜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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