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에 첫발

크림반도에 첫발

[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1>

박종인 선교사
2022년 07월 12일(화) 10:43
크림반도 첫 교회인 주사랑교회.
도착 다음날 교회 뒤 밭에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모태신앙이던 필자가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고3이던 어느 날 장로이던 아버님이 우리 4형제를 앉혀 놓고 전에 없던 진지한 모습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장로인데 너희 넷 중 누구 하나는 목회의 길을 걸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이후 그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말씀은 바로 장남인 나에게 하신 주님의 부르심이었다. 모교회 목사님과 진로 상담 후 일반대학(철학과)에서 배우고, 군대(학사장교)를 거쳐 광나루 신학대학원에 입성하였다.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목회 훈련을 받는 가운데 주님은 나에게 한국에서 목회하기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선교의 길을 열어 주셨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주님! 내 뜻대로 마시고 주께서 열어 주시는 길이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6개월이 지나던 가운데 섬기고 있던 교회 담임 목사님이 어느 날 모임 중에 말씀하셨다. "선교지 한 곳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우리 부목사님들 중에 갔으면 좋겠는데 누구 갈 사람 없는가?" 눈이 번쩍 뜨였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손을 높이 들었다.

그 선교지가 어딘 지도 묻지 않았다. 어떤 곳인지도 묻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바로 지금 전쟁이 한창 중인 우크라이나였다. 그때부터 새로운 기도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부목사로서 교구의 일로 바쁜 나를 대신하여 집사람이 9개월 된 셋째를 업고 식구들의 여권과 큰 아이들의 학교 서류, 우크라이나 영사관을 가서 비자를 만들고 집안 살림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때 고생한 집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 전에 집안에 큰 일이 하나 있었다. 부친에게 담도관 암이 발생한 것이다. 집사람의 열정으로 당시 가장 유명한 전문의사를 만나 빨리 수술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수술도 잘 되어 관리 잘하고 음식 조절만 잘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동안 정들었던 성도들과 감격의 눈물로 파송예배를 마치고 선교지로 향했다.

우크라이나!! 세계 지도에서 어디쯤 있는가? 여태까진 들어보지도, 말하지도, 알지도 못하던 나라였다. 게다가 '크림반도', 세계사 공부할 때 잠시 스쳐 지나갔던 크림전쟁, 얄타회담이 열렸던 얄타, 그 정도가 지식의 전부였다.

우리는 선교지를 답사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교부에 있는 어떤 목사님이 그곳을 다녀왔는데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그냥 몸만 가면 된다는 너무도 확실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출발 이주일 전에는 선교지에 가면 세 개 교회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는 두 곳에는 다른 선교사가 이미 들어왔기 때문에 한 곳만 맡으면 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열 일곱 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지막 비행기가 내린 곳은 크림반도의 수도인 심페로폴 공항이었다. 새벽 1시쯤이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부부와 6학년, 3학년 그리고 9개월된 세 딸이었다. 김 아나똘리라는 고려인이 오래된 승용차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곧바로 우리를 태운 차는 그 새벽에 끝도 없이 달려갔다. 도로는 자주 덜컹덜컹하여 좋은 길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끔씩 희미한 불빛이 있어 마을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가로등도 없어 캄캄 그 자체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얼마를 갔을까? 두 어 시간은 지나간 것 같았다. 드디어 차가 중심 도로에 벗어나 마을 안으로 가더니 비포장길을 한참 달리고서야 멈추었다. 아이들은 지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어느 집 앞에 내렸는데 이곳이 교회라고 한다. 잠잘 곳을 찾아 그제서야 지친 몸을 눕힐 수 있었다. 이렇게 크림(반도)에 왔다.


박종인 목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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