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5>
박종인 선교사
2022년 08월 16일(화)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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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교회가 위치한 세바스토폴 도시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에메랄드 바닷가에 파도가 넘실거리고 저녁이면 아름다운 석양이 수많은 시민들을 불러낸다. 붉은 태양이 바다 속으로 얼마나 빨리 들어가는지 눈에 보인다. 그 바다 한 곁으로는 흑해 함대를 숨겨 주둔할 수 있는 천혜의 요소에 100여대나 되는 배들과 함대가 있는데 그 하나 하나를 작은 배를 타고 다니며 가이드가 설명하는 관광코스는 일품이다. 그 옆에서 한 사람이 반두라(우크라 전통악기)로 소리를 내면 우크라 전통복을 갖춰 입은 여러 중년 남녀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며 훨훨 춤추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해안가에서 멀지 않는 곳에 테니스장이 있다. 그곳은 내 친구 발로쟈가 운영하는데 매주 목요일 오후에 함께 교제를 나눈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 이야기도 하며 복음도 전하는 추억의 장소이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구기 종목은 축구다. 유럽 축구현장이 그러하듯이 거의 광적일 정도로 무척 좋아한다. 아마 그 다음은 테니스인 것 같다. 4~5세의 어린 자녀들을 아카데미에 맡겨 선수로 육성하는 곳이 곳곳에 있다. 교회가 있는 마을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나만의 방법은 테니스 라켓과 공 두어 개면 족하다. 놀이터에서 공으로 벽을 몇 번 치면 아이들이 신기해 하며 하나 둘 모여든다. 30년 구력의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 중 용기 있는 녀석이 나도 한 번 치고 싶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줄을 서면서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하고 기다린다. 이리하여 이름도 주고 받으며 금세 친구가 된다. 끝까지 남는 두 녀석에게 공을 하나씩 선물로 주면 너무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도 교회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세바스토폴에 가서 1년 반이 지나도록 교인이 없었다.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성도는 오지않고 돌만 날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기도하며 견디고 버텼더니 때가 찾아왔다. 미국에서 1.5~2세대 고등학생들과 그 교회 부교역자가 우리 아름다운교회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방학 기간에 맞춰 영어캠프를 한다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랬더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관심을 보이더니 첫날부터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풍선 놀이도 하며 신나게 함께 땀 흘리며 놀았다. 성극 요나 이야기, 다니엘의 사자굴 이야기도 영어로 온 팀들이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주일에도 오라고 초청했다. 얼마나 기도하며 기다렸던가!
복되고 거룩한 주일 아침, 청소하고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할렐루야!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온 것이다. 그때부터 두 번째 교회 예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도 점점 많이 왔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엄마들이 오기 시작했다. 더 감동적인 것은 한 부모가 나왔는데 그들에게는 자녀가 열 명이나 있었고 모두 출석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연세 드신 분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예배당이 만석이 되었다. 거기엔 김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매워하더니 나중엔 더 달라고 하기까지 했다. 간간이 한국 김밥, 떡볶이도 맛보더니 많이 좋아했다.
몇몇 청년들을 모아 찬양팀을 조직하여 첫째와 둘째 딸이 이끌어 주일엔 아름답게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놀라운 주님의 은혜였다. 한 분 한 분이 너무 귀했다. 주일 오후에는 한글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말하기를, 자신은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은데 인터넷으로만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셔서 원어민 발음 한 번만 들려줄 수 있겠냐는 거다. 당시 세바스토폴에는 한국인이 우리 한 가정 밖엔 없었다. 그래서 한 두 번 가게 되면서 학원강사가 되었다. 이때 이미 '오빠는 강남스타일'이 젊은이들 입에서 나오면서 한류열풍이 강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