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전교인 '라게리(수련회)'

4박 5일 전교인 '라게리(수련회)'

[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6>

박종인 목사
2022년 08월 23일(화) 08:13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열린 청년 수련회.
당시 크림 반도 미드베제프카 시골 마을 뿐 아니라 세바스토폴 도시에도 길거리에 개들이 참 많았다. 작은 개부터 커다란 개까지 두 세 마리가 다니는 건 흔하고 어떨 땐 십여 마리가 떼지어 다니기도 했다. 그놈들을 만나면 머릿털이 바짝 설 정도로 섬칫해진다. 알고보니 그 날 변 선교사를 물었던 녀석은 전과가 있었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전에도 짖지도 않다가 조용히 뒤로 다가와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민들이 말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개나 고양이를 무척 사랑한다. 주인 없는 녀석들에게 먹이를 매일 주는 할머니들이 꼭 있다. 비둘기에게도 주는데 이러한 행위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내면엔 그들에게 자비 자선을 베풀므로 자신도 신에게 자비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집집마다 개나 고양이와 같이 산다. 이번 우·러전쟁 이후 폴란드 국경에서 특이한 장면을 보았다. 피난 나오는 우크라이나 백성들을 위하여 간이침대와 먹거리를 준비해 두는 것은 당연한데 한 곳엔 개, 고양이 먹이와 작은 우리까지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많은 피난민들이 함께 지내던 동물들을 데리고 나오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도 지난 2월에 나오면서 개를 데리고 나왔다. 셋째와 막내의 전쟁 트라우마(러시아의 크림합병 때)로 인해 전문가의 권유로 키워왔는데 이미 식구가 돼 버렸다. 아이들 치료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이 부분은 다음 '크림 탈출기' 때 좀 더 다루려 한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온 성도들이 한 주간 한 자리에 모여 성경통독을 했다. 처음엔 모이는 게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휴일이나 주말 혹은 연말 연시는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그들의 문화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두해 계속했더니 참석률이 높아졌다. 성경공부나 통독이 없었던 이전 신앙생활이나 정교회에서 맛보지 못한 걸 느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성경필사도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서 잘 하곤 했다.

한 해 추수를 마치는 10월 말이면 우크라이나 내륙 오데사라는 항구도시에서 라게리(수련회)가 있어 온 교우들이 참여한다. 오후 늦게 기차(침대)에 몸을 실으면 밤새 달려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거기서 대형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면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교회당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전국에서 온 교우들과 즐거운 4박 5일의 시간을 갖는다. 또 젊은이들은 청년 라게리를 따로 가졌는데 그 수련회를 참여하기 위해 기차비 등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직접 모으는 기특한 녀석들도 있다. 그 때 그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한국에 흩어져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잔잔한 기쁨이 몰려온다.

한 번은 독일에서 성악하는 젊은이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주었다. 골목 골목을 밟으며 전도하고 그 땅을 축복해 주었다. 전공을 살려 마을 한복판 좀 넓은 공간에 임시 무대를 만들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려 했는데, 이런 일은 반드시 경찰서에 신고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누군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서를 찾아가 수박과 선물을 주며 마음을 사서 허가를 받았다. 당일에 아이들,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었다. 할렐루야! 여기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니 얼마나 큰 감격이 몰려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찬양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아파트에서 큰 소리로 녹음기를 틀어 방해를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른 물리적 방해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경찰 두 사람이 처음부터 출근하여 우리들을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주민들은 지나가면서 경찰에게 왜 막지 않냐고 작지 않은 소리로 항변했으나 경찰은 그들 특유의 제스처(양손을 옆으로 벌리며 어깨를 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뜸)로 보여줄 뿐이었다. 그날 그렇게 복음이 전해졌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허가부터 쉽지 않았다. 이웃 모두가 동의를 해주어야 하는데 한 집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전부터 떡도, 수박도, 한국에서 온 것들도 주면서 잘 사귀었지만 안 되는 건 안된다는 것이다. 일조량 문제를 붙들고 한치의 양보도 없다. 그러는 중에도 한국의 모교회에서 단기선교팀이 오기로 했고 거기에는 건축 전문가도 포함돼 짧은 기간이지만 건축 기초까지만이라도 하고 싶다면서 벌써 기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주께서 하시는구나!' 함께 기도하며 매일 이웃을 만나고 경찰서도 들락날락했다. 숱한 난관들이 은혜로 술술 풀리면서 단기선교 팀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 포크레인이 들어와서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교팀이 도착한 때는 연중 제일 더운 7월 말이었다. 포크레인이 어느 정도 바닥을 파낸 후 한국에서 온 정예단기선교부대가 투입되었다. 기계가 닿지 않은 곳들을 삽과 정과 망치로 반듯하게 하고 바닥도 깔끔히 정리한 후 사방 벽에 판자를 세워나갔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밖에 둔 온도계가 끝까지 치고 올라가 버렸다. 50도가 넘었던 거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레미콘 차가 대문 밖에서 긴 호스를 연결하여 콘크리트를 가득 밀어 넣는다. 그 사이에도 할 일들을 찾았다. 이렇게 일하는 한인들을 본 우크라이나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몇 번이고 쉬라고 말했다.



박종인 목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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