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반전을 기대

하나님의 반전을 기대

[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완>

박종인 선교사
2022년 10월 18일(화) 08:20
수도에서 100km 떨어진 쁘싀끼 마을의 '기도의집교회'.
매년 8월 첫 주간에는 유럽선교사회 세미나가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개최된다. 1년 동안 흩어져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 힘차게 일하던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들과 은혜를 나누기도 하며 쉼과 재충전을 가지는 시간이다. 한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시는 목사님들이 오셔서 귀하게 섬겨주신다. 유럽 각국에서 항공이나 자동차로 휴가 삼아 온다. 우리도 몇 차례는 자동차로 이동했다. 다녀오면 2000킬로미터 이상이 되지만 멀다 하지 않고 재미난 여행으로 추억하며 매년 그 때가 기다려지곤 했다. 그런데 우리 집 막내 생일이 꼭 그 때다. 돌 때에는 세미나 가는 중 슬로바키아 맥도날드에서 가족끼리 축복했고, 한 번은 모임 중 모두가 축하해 주기도 했고, 식사 자리에서 지인들이 함께 축복해 주기도 했다. 또 한 번은 모임에 가다가 길거리에서 차를 세워 놓고 한 끼를 먹으며 축하하기도 했다. 올 해에는 전쟁 덕분에(?) 고국에서 화려하게(?) 열 네번 째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다섯 식구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각각 그의 통장으로 용돈을 쏘아주었더니 입이 귀에 걸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복음 성가 가사 대로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이 은혜 아닌 게 하나도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아니면 나의 이 글이 어떻게 지면에 오를 수 있었겠으며, 고국에서의 쉼, 그리고 그 쉼 가운데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은 심한 두통이 있었고 여러 차례 검사 결과 '파열되지 않은 대뇌동맥류'라는 병을 발견하여 수술을 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한 일일 뿐이다.

3년 전에 쁴싀끼 마을(수도에서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기도하는집교회를 만난 것도 또 하나의 큰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지인을 통하여 그 교회 사역자를 만나게 하셨고 매주일 함께 예배하며 파트너가 되게 하셨다. 20~30명이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열렬히 주를 찬양하는 시골 교회이다. 교회 사역자는 목사이자 농부다. 목회자이지만 정식 신학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넓은 들이 있고 여러 다양한 트랙터가 있다. 그리고 매우 큰 창고가 있는데 그곳에는 적지 않은 양의 밀과 해바라기 씨, 다른 곡물 그리고 여러 기계들이 보관 되어 있다. 농번기에는 얼마나 바쁜지 주일에도 수확을 하느라 얼굴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를 믿고 편안히 주일에도 일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지고 있는 트랙터로 마을 사람들의 수확도 해 주느라 더 바쁘다.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라고 나를 그곳으로 주께서 보내신 것 같다. 평상시 주일에는 예배 중 설교자가 사샤 목사와 나 둘이다. 어떤 주일에는 다른 설교자가 있어 넷이 설 때도 있었다. 10시에 시작한 예배가 한 시 반에 마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를 코칭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1년 동안은 그저 묵묵히 함께 예배했다.

청년들이 몇 명이 있어 변 선교사(아내)가 찬양을 연습시켜 우리 자녀들과 함께 찬양대를 세웠다. 빔 프로젝트도 설치하여 찬양 가사, 성경 말씀, 주기도문도 띄웠더니 성도들도 좋아했다. 그 중 한 자매를 찬양 리더로 세웠더니 얼마나 좋아하고 잘 하는지 모른다. 또 좀 어린 자매는 피아노 실력이 좀 서툴었지만 곡들을 미리 주었더니 다 외워와서 친다.

가을 이 맘 때가 되면 매 주일에 여러 성도들이 먹거리들을 가져다 차에 실어준다. 양파, 감자, 호두, 계란, 고추 등등 집에서 키운 것들을 풍성히 나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가끔 변 선교사도 맛있는 한국요리를 준비하여 예배 후에 나눌 때면 모두들 얼마나 기뻐하는지 …. 그러다가 지난 2월 둘째 주일 예배를 마치고 갑작스런 작별 인사를 했더니 눈물 바다가 되고 말았다. 우리 나라 외무부에서 긴급하고도 강한 철수권고를 내려서 잠시 한국에 다녀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해도 아쉬움과 슬픔은 어찌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장기화 될 줄 그들은 알았는지 아니면 선교사들은 가면 못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버리고 온 것 같아 마음이 쓰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은 전쟁의 소문이 지난 연말부터 솔솔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이 현실화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왜냐하면 러시아와는 형제나 다름 없고 같은 슬라브어를 쓰고 몇 년 전 만해도 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발발 한 달 전에 미 주재원들이 출국하더니 뒤이어 영어 학교 미국 교사들이 어느 날 사라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우리 나라도 급히 출국을 권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 사업하는 분들 그리고 선교사들은 급히 티켓을 구입하여 이웃 나라 혹은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 도착하여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쟁을 통한 하나님의 반전을 기대한다. 전쟁은 위기요 고난이지만 절망은 아니며 종착역도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임을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


박종인 목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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