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완>
박종인 선교사
2022년 10월 18일(화)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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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쁴싀끼 마을(수도에서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기도하는집교회를 만난 것도 또 하나의 큰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지인을 통하여 그 교회 사역자를 만나게 하셨고 매주일 함께 예배하며 파트너가 되게 하셨다. 20~30명이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열렬히 주를 찬양하는 시골 교회이다. 교회 사역자는 목사이자 농부다. 목회자이지만 정식 신학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넓은 들이 있고 여러 다양한 트랙터가 있다. 그리고 매우 큰 창고가 있는데 그곳에는 적지 않은 양의 밀과 해바라기 씨, 다른 곡물 그리고 여러 기계들이 보관 되어 있다. 농번기에는 얼마나 바쁜지 주일에도 수확을 하느라 얼굴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를 믿고 편안히 주일에도 일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지고 있는 트랙터로 마을 사람들의 수확도 해 주느라 더 바쁘다.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라고 나를 그곳으로 주께서 보내신 것 같다. 평상시 주일에는 예배 중 설교자가 사샤 목사와 나 둘이다. 어떤 주일에는 다른 설교자가 있어 넷이 설 때도 있었다. 10시에 시작한 예배가 한 시 반에 마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를 코칭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1년 동안은 그저 묵묵히 함께 예배했다.
청년들이 몇 명이 있어 변 선교사(아내)가 찬양을 연습시켜 우리 자녀들과 함께 찬양대를 세웠다. 빔 프로젝트도 설치하여 찬양 가사, 성경 말씀, 주기도문도 띄웠더니 성도들도 좋아했다. 그 중 한 자매를 찬양 리더로 세웠더니 얼마나 좋아하고 잘 하는지 모른다. 또 좀 어린 자매는 피아노 실력이 좀 서툴었지만 곡들을 미리 주었더니 다 외워와서 친다.
가을 이 맘 때가 되면 매 주일에 여러 성도들이 먹거리들을 가져다 차에 실어준다. 양파, 감자, 호두, 계란, 고추 등등 집에서 키운 것들을 풍성히 나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가끔 변 선교사도 맛있는 한국요리를 준비하여 예배 후에 나눌 때면 모두들 얼마나 기뻐하는지 …. 그러다가 지난 2월 둘째 주일 예배를 마치고 갑작스런 작별 인사를 했더니 눈물 바다가 되고 말았다. 우리 나라 외무부에서 긴급하고도 강한 철수권고를 내려서 잠시 한국에 다녀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해도 아쉬움과 슬픔은 어찌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장기화 될 줄 그들은 알았는지 아니면 선교사들은 가면 못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버리고 온 것 같아 마음이 쓰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은 전쟁의 소문이 지난 연말부터 솔솔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이 현실화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왜냐하면 러시아와는 형제나 다름 없고 같은 슬라브어를 쓰고 몇 년 전 만해도 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발발 한 달 전에 미 주재원들이 출국하더니 뒤이어 영어 학교 미국 교사들이 어느 날 사라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우리 나라도 급히 출국을 권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 사업하는 분들 그리고 선교사들은 급히 티켓을 구입하여 이웃 나라 혹은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 도착하여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쟁을 통한 하나님의 반전을 기대한다. 전쟁은 위기요 고난이지만 절망은 아니며 종착역도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임을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