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연속

은혜의 연속

[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2>

박종인 선교사
2022년 07월 19일(화) 17:39
강풍에 뚫어진 교회 지붕.


크림반도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광풍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교회에 사택이 없었다. 교회를 지키는 내외분이 거하는 곳이 있었지만 마굿간을 조금 손본 것이었고 우리 다섯 식구가 머리 둘 곳은 없어서 급히 기거할 곳을 찾아야 했다. 와중에 심페로폴에서 택시를 타다가 사고가 나고 말았다. 식구들이 다 타고 내가 마지막으로 타면서 다리를 택시 안으로 넣기도 전에 운전수가 급히 출발했고 오른쪽 다리가 땅에 4~5미터를 끌려가면서 복숭아 뼈쪽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상처는 시커멓게 번졌고 통증도 심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때 다시 한 번 변 선교사(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가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 감자를 갈고 밀가루와 반죽하여 상처에 바르고 온 식구가 내 다리를 붙잡고 기도하며 비닐로 밤새 싸두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반죽이 온통 검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번 했더니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 볼 때마다 감사하게 된다.

집을 구하고 수요일 예배를 앞 둔 어느 날 25킬로미터 떨어진 교회에서 사역하는 한 한국인선교사가 우리 교회에 있는 예배실 의자는 자기 교회 것이니 당장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그 복잡한 관계는 다 말할 순 없지만 차를 불러 갖다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도시에 있는 여러 가구점을 들러 우리에게 필요한 의자를 절반 정도 구할 수 있었다. 예배당 바닥에 반은 장판을 깔고 예배를 드린 후 다음 날 목공소에 장의자를 주문 제작하였다.

우기가 시작되자 마을 끝에 있는 교회로 오는 길이 진흙탕이 돼 우리는 50여 미터 되는 길을 포장해야 했다. 함께 일하는 일꾼이 전날 술을 마시거나 집에 일이 있으면 말도 없이 오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바닷가 마을이라 겨울이 다가오면 거대한 바다 바람이 불어 닥치곤 했다. 매주일 5~10분씩 늦던 성도들이 왠일인지 그날은 예배 시간 전에 모두 도착해 있었다. 바로 그날 돌풍이 불어 교회 지붕을 덮던 슬레이트 16장이 날아갔다. 날아간 슬레이트가 칼날이 되어 교회 마당에 꽂혀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거주등록을 3개월마다 가까운 외국을 나가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 와야만 했다.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아직 차가 없어서 밤새 기차(침대)를 타고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서 국경을 넘고 다시 돌아오는 여행은 전혀 낭만을 찾을 길이 없었다. 온 식구가 가야 했는데 막내는 아직 어려서 업고 다녀야 하고 짐은 짊어져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기다리던 버스는 오지 않고, 택시도 없어 한참을 사람들과 걸어 나왔더니 교통사고로 도로에 차들이 움직일 수가 없었던 당시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몇 번째 거주등록 여행(?)이었을까! 국경 가까이 왔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제수 씨의 급한 목소리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도 제시간에 귀국할 수 없고, 가까운 곳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도 못되었다. 눈물만 나왔다. 결국 장례 기간 동안 귀국하지 못하고 뒤늦게 납골당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파송을 받을 때에는 교단 총회의 파송을 받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연령제한이 있어서 였다. 방법은 먼저 현장에 가서 선교하다가 기회가 있을 때 선교훈련을 받는 길이다. 해서 2년 만에 귀국하여 선교훈련을 받고 총회 파송 선교사가 되었다. 그런데 훈련 중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변 선교사가 아파하며 힘들어해서 병원에 갔더니 산부인과를 가보라고 했다. 임신테스트 결과 생명이 태중에 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감기약을 복용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선교현장으로 돌아와 병원을 들렀더니 '아들'이라고 하여 다시 놀랐다. 딸 셋만 데리고 선교에 매진하리라 다짐했었는데 생명의 주께서 선물을 허락해 주셔서 기쁨으로 받았다. 우크라이나 한인선교사들도 모두 함께 기뻐하며 아기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생후 2개월부터 아기에게 문제가 발생하였다. 병원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으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들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도하던 변 선교사의 마음에 급히 한국으로 아기를 데리고 나가라는 마음을 주셨고 서둘러 한국으로 나아와 ㅅ대학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호통을 치면서 큰 일 날 뻔했다면서 아기 몸 속에 있는 세균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신장 중 하나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해 버렸고 나머지 하나는 85% 일을 한다고 한다. 심하면 이식을 해야 하니 준비하라는 권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더니 이제는 아빠보다 키가 훨씬 컸다. 의사는 기적이라 말하지만 여전히 살얼음을 걸어가고 있다.

러시아어 알파벳을 하나도 모른 채 현지 학교를 들어간 두 딸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학교에 보냈는데 곧 전화가 왔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학교에 아무도 안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10분 더 기다려 보고 돌아오라고 했다. 분명히 전날에 '내일은 수업이 없다'고 공지했지만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6개월여 지나더니 알아듣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나니 주일 설교를 통역하는 통역자의 내용이 다른 길로 가면 알아듣고 말해주었다. 첫째는 이제 키이우 치대(Bogomolets National Medicail University)를 레지던트까지 마치고 의사가 되었고, 둘째는 셰프첸코대학에서 통번역과를 마치고 장신대 신대원에 재학하면서 Y교회 러시아어 예배 담당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박종인 목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하나님의 반전을 기대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완>    |  2022.10.18 08:20
추방 당한 후 다시 시작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8>    |  2022.09.06 08:36
세바스토폴 교회 부흥기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5>    |  2022.08.16 08:10
고려인들이 절반인 주사랑교회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3>    |  2022.07.26 08:17
크림반도에 첫발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1>    |  2022.07.12 10:43
이방인을 대하는 특별한 환영식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4>    |  2022.08.10 10:48
4박 5일 전교인 '라게리(수련회)'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6>    |  2022.08.23 08:13
결국 '크림'에서 탈출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7>    |  2022.08.30 08:15
특별한 여름성경학교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9>    |  2022.09.27 08:33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