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함께 하니 새 길이 열렸어요"

"이웃과 함께 하니 새 길이 열렸어요"

[ 우리교회 ] 서울관악노회 예수세계교회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04월 05일(금) 13:07
예배 후 담소를 나누는 교인들.
목회는 인생을 꼭 닮았다. 결코 쉽지 않다. 서울관악노회 예수세계교회(이종운 목사 시무)도 오늘날 경기도 안양시에서 약하고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지역민 섬김 사역을 정착시키기까지 무수한 어려움을 겪었다.

1971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설립된 예수세계교회(당시 이름 신계교회)는 고시생들과 신림동 토박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교회였다.

벧엘노인요양원 잔치 모습.
이종운 목사가 담임으로 부임한 건 2000년 4월. 당시 나이 37세였다. 대학에서 건축 관련 전공을 한 후 1989년 신림동 고시촌에 상경하여 기술고시를 준비하다가 신학을 하게 되었고, 서울여대와 대구제일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지내다가 담임목사 후보자로 설교하러 주소를 받아들고 버스에서 내린 곳이 신림동 고시촌 10년 전에 내렸던 바로 그 정류장이었다고, 자신이 청년시절 지내던 고시원에서 멀지 않는 곳에 교회가 있어서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고시생들의 힘든 생활,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직접 경험했던 이 목사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가 이들에게 힘을 주고 소통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교회 재정이 넉넉지 않았지만 최고급 음향시설과 스크린을 설치하였고, '대한민국 8강 간다'라는 현수막을 교회 앞에 내걸었다. 월드컵 기간 거의 매 경기에 축구를 보러 오는 고시생 청년들로 본당이 차고 넘쳤다.

이렇게 교회 문턱을 기꺼이 넘어 들어온 청년들은 월드컵 경기가 끝나고도 하나둘 교회를 찾아주었다. 처음 부임할 당시 토요 청년부에 참석하는 청년이 5~6명에 불과했는데 주일예배에 청년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청년들로 활기가 넘치자 2003년부터 가까운 청소년회관 강당을 주일에 대관해 5년 동안 예배를 드렸고 기존 건물은 청년센터처럼 운영됐다. 그 5년 동안 교회에 등록 또는 활동하는 청년들은 줄잡아 300여 명이 넘었다.

# 새 건물 건축과 함께 바뀐 교회 사역



그러나 2011년 11월 안양시 석수동에 교회를 신축, 이전하면서 예수세계교회의 사역 방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안양에 건축 부지를 마련한 후 건축 과정에서 기존의 성도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갔다. 어렵게 안양으로 이전하고 보니 어르신들 몇 분들과 교역자들 가족, 이 목사가 세례를 주었거나 주례한 젊은 집사들, 그리고 70여 명의 고시 청년들만 남았다. 연건평 6백 여 평의 건축비를 감당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가운데 기적같이 길이 열리고 문제가 풀리면서 감격스러운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건축이 완료된 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토록 어렵게 교회를 건축하고 옮겨 왔는데 사람이 오지 않는 교회라니.' 이 목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교회 건물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떻게 목회를 해나가야 할지를 묻는 기도를 드렸는데 지역주민들에게 물어보라는 작은 음성이 마음 가운데 오롯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생각해보니 건축설계를 할 때 이 지역 사람들의 생각과 필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곧바로 지역사회 욕구조사서를 만들어 설문을 받으러 다녔다. 분석 결과 석수동 주민들의 욕구는 '복지', '교육', '문화'로 압축됐다.

이종운 목사
이 목사가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된 것은 교회가 믿는 자들만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 목사는 "석수주민센터에서 다년간 위원과 감사, 고문 일을 하면서 보니까 요즘 일반 주민들은 돈이 필요하면 은행가고, 살기 어려우면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를 찾아가면 되고, 아프면 병원을 간다고 하더라. 사실상 교회 올 일이 없다"며 "세상이 교회보다 더 투명하고 전문적이며 체계적으로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우리끼리의 모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꼈고,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나래다함께돌봄센터 발표회
이러한 각성과 함께 예수세계교회는 문화센터부터 시작했다. 35개의 강좌를 개설해 지역주민들에게 교육을 제공했지만 혼자 힘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감당이 어려웠다고 했다.

힘들었지만 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교회의 각층 공간이 주일만 아니라 평일에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고, 안 믿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교회 앞에는 어려운 이웃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쌀을 가져 갈 수 있도록 쌀독이 마련되어 있다.
이 목사는 교회 건축 이후 사례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교회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 자비량 사역을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 약하고 병드신 어르신들을 돌보기 위한 요양원을 시작했다.

2014년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고, 요양시설을 다녀보면서 구조와 운영에 대해서, 그리고 법령들도 알아봤다. 종교시설로 지정된 교회를 용도 변경해야 했다. 각층 내부를 헐고 다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재정이 없어서 교회 장로님 한 분과 함께 매일 일을 하다시피 했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차근차근 변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예수세계교회의 1층 카페는 장애인협동조합에 무상 임대하고 MOU를 체결하여 돕고 있다. 카페를 장애 청년들의 일자리 사업으로 운영,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고 있다. 2층에는 일부 공간에서 학교 부적응 또는 위기 학생을 위하여 경기도교육청에서 위탁해 준 '나래예능 고등학교'로 운영되고 있고, 일부는 안양시 지정위탁 '다함께돌봄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방과 후 24명 어린이들이 숙제를 하거나 독서와 악기교실, 영어회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맞벌이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이 됐다. 3층 석수주간보호센터에서는 고령화 시대에 발맞추어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각종 사회활동 및 재활을 지원하고 있고 4층은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소속 벧엘노인요양원으로 운영되는데 15명의 어르신들이 입소하여 섬김과 나눔의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동행하는 교회



현재 예수세계교회 교세는 주일에 100여 명 교인들이 모인다. 그런데 교회 내 센터와 시설에서 3시간 이상 일자리로 인건비를 받는 이들이 50~60명에 이른다. 교인들이 이곳 시설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직원으로 취직한 후 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더디지만 코로나 이후 교인들의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교회가 문턱을 낮추고 지역사회와 소통한 결과라고 이 목사는 생각한다.

이 목사는 "우리 교회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아프고 가난하고 힘들고 병든 분들이신데 자세히 보면 이분들은 변장한 천사들"이라며 "지역주민들을 더욱 낮은 자세로 섬기기 위해 지역의 필요를 계속해서 살피고 더 많이 나누는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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