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유익" 변창갑 장로의 삶과 신앙

"고난이 유익" 변창갑 장로의 삶과 신앙

[ 기획 ] 흙표흙침대 인천총판 (주)인천흙 대표이사 변창갑 장로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20년 04월 06일(월) 10:10
(주)인천흙 대표이사 변창갑 장로는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내리며 정상에 설 때보다 하산하며 진리를 배웠다"고 간증한다.
"산 정상에 오르려면 힘겹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서면 고작 몇 십분 머물고 바로 내려오죠. 그게 삶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저는 영원히 정상에서 사는 줄 알았습니다. 내려온다는 걸 알아야 해요."

흙표흙침대 인천총판인 (주)인천흙 대표이사 변창갑 장로(인천시온감리교회 원로)가 전하는 인생의 진리다. 그는 지난 삶의 여정에서 정상에도 서봤고, 밑바닥도 경험해봤다. 정상에 아등바등 올라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교만임을 깨달았다.

변 장로는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며 울퉁불퉁한 길을 만나 걷기 불편한 적도 있고, 갑작스런 낭떠러지에 떨어질뻔 했고, 야생동물이 위협하기도 했다"며 "인내를 품고 도전을 이겨내며 정상에 오르면 다 이룬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하산할 때 등에 진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고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욕심이 조금씩 털어내지고 한껏 여유로워졌다"고 설명했다.

나이 80이 가까운 이제서야 하나님의 섭리가 이해되는 그다. 그는 정상에서 하산하며 내려놓음과 자기비움을 배웠다.

변창갑 장로는 경남 합천군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집안 어른들이 선황당을 섬기는 환경에서 자랐다. 선황당 제삿날에는 새벽부터 목욕재계를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고 선교에 매진하게 되었을까?

유교집안에서 태어난 변창갑 장로는 군대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가봤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며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변 장로는 군대에서 교회를 처음 가봤다. 대구 훈련소에 입소해 훈련병으로 지내던 당시 갇혀 지내는 답답한 마음이 들어 잠시나마 바깥 공기를 쐬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갔다.

"훈련소에 들어가니 갑갑하기도 하고, 민간인도 보고 싶고, 특히 주일에는 노동에 차출되는 일이 많아 교회로 갔습니다."

변 장로는 의무병 교육을 받고 수도육군병원으로 자대 배치됐다. 항상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스타일인 그는 안정적인 군생활에 활기를 잃자 베트남전쟁 파병을 자원했다.

강원도 춘천의 파월장병 훈련소로 들어갔다. 거기서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1969년 12월, 일주일간 배를 타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후송병원의 관리사병으로 보직을 받아 1년 반을 복무했다. 그때 병원교회에서 감리교 군목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탄절이었어요. 그날 저를 포함해 두명이 세례를 받았는데, 생년월일이 똑같았어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포병부대 의무대로 배치된 후 재파병을 요청해 베트남 전장으로 향했다. 간부도 아니고 일반 사병이 재파병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두번째 파병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새벽녘 막사로 수없이 떨어진 포격에 의해 전우들이 죽음을 맞았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변창갑 장로와 믿음의 동반자인 박계순 권사. 부부는 어려운 현실이 닥치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생각하며 감내했다.
전역 후인 1976년 국내 대기업의 유통대리점을 인천에서 운영하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대 중반이던 1981년에는 대리점 운영이 성공하며 모아놓은 돈으로 110평짜리 대형 슈퍼마켓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생필품을 팔던 상점은 구멍가게 수준이 전부였던 시절이라 대형 슈퍼마켓은 획기적이며 모험이었다. 슈퍼마켓은 6개월만에 부도가 났다.

부도가 임박하며 슈퍼마켓에 넋놓고 앉아있던 변 장로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교회의 찬송 차임벨 소리였다.

동네에서 계속 울리던 찬송 차임벨이었지만 마음이 곤고해지니 그제서야 귀에 들어왔다. 복음을 알았으나 부인하고 있던 변 장로에게는 '베드로가 듣던 닭울음 소리'와 다름없었다.

변 장로는 "찬송 차임벨을 들으니 갑자기 교회가 그리웠다"며 "하나님 제대로 한번 믿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회개하고 집 근처 동인천감리교회를 출석했다. 부도를 맞았으나 정작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도로 당좌수표를 회수하지 못해 20일간 유치장에 갇혀 지냈는데, 여기서 성경을 처음으로 일독했다.

인생의 담금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폐결핵을 앓았다.

그 무렵 부인 박계순 권사의 신앙이 고난을 통해 성숙해졌다. 부부는 기도원을 찾아 하나님께 뜻을 구하고 매달렸다. 현실은 어려워도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생각했다.

기도원에 들어가 결핵 치유를 위해 무릎 꿇었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내려놓기 위해 금식을 시작했다. 100일 아침 금식을 마치며 치유에 대한 확신이 들어 기도원을 나왔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재기의 발판으로 생필품 도매업을 시작했다. 도매업이 잘 되며 국내 대기업의 유통대리점을 다시 차렸다.

이 즈음 감기가 심하게 걸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다 결핵이 완치된 사실을 알았다. 치유의 하나님은 그렇게 변 장로를 만지셨다.

유통대리점을 운영하며 승승장구했다. 전국 100개의 대리점을 대표하는 직분까지 맡았다. 그렇게 또다시 정상에 올랐다.

그러던 중 대기업측에서 물류센터를 만든다는 소식을 접하고, 직접 맡아서 진행해보겠다는 제안을 해 통과됐다. 대기업측이 대출해 준 4억원을 기반으로 김포에 4000평의 땅을 사서 물류센터 조성을 추진하던 중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

물류센터 조성이 무산됐지만 땅을 포기할 수 없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대기업측에 갚았다. 과욕이었다. 그 땅은 그린벨트로 묶여 팔 수조차 없었고, 사채로 인한 빚이 늘어 유통대리점까지 청산하며 엄청난 손해를 봤다.

변 장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 했다. 오로지 "땅만 팔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자신을 믿었다.

"그때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드리며 '그냥 땅만 팔리게 해주세요'라고 할 정도였어요."

10년의 세월이 흘러 1997년 IMF가 터지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자만 한달에 2000만원이었다. 돌침대 사업과 부인 박 권사가 하던 이불 도매업에서 들어오던 돈이 모두 이자로 빠져나갔다.

그가 갚아야 할 빚이 약 15억 6900만원이었다. 10년 전 4000평의 땅을 사며 빌린 사채 3억은 고금리로 인해 10억이 됐다.

변창갑 장로는 현재 흙표흙침대 매장 6곳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사업실패로 위기를 맞는 과정에서, 겸손과 절제를 배웠다.
땅이 팔리도록 10년 넘게 머리를 쥐어짜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마음이 괴롭고 견딜 수가 없어 교회의 '기도 굴'로 들어가 기도를 했다.

정상에서 승승장구할 것으로만 생각하다 벼랑 끝에 몰린 그는 하나님만 붙들고 매달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까?"라는 배짱까지 생길 정도로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금식기도원에 들어가 결사적인 기도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사채업자가 시가 20억이 넘는 땅을 절반도 안되게 경매에 부쳐버린 상황이 닥쳤다.

기도원에서 원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구나!"라는 확신을 받았다.

변 장로는 "고름이 나올 정도의 종기가 그냥 살이 되기를 바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파도 고름을 긁어내야 새 살이 나온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고 회고했다.

기도원에서 나온 그는 경매 2순위인 장로를 찾아가 "경매 1순위 사채업자의 것을 해결해주면 김포 땅을 명의이전 해주겠다"고 요청했다. 그 장로는 2주간의 기도 후 승낙했다.

변 장로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경매가 진행이 되고 한달 정도의 유예기간 동안 돈을 갚지 못해 소위 '경낙'이 되면 구제방법이 없는데 바로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문제가 해결됐다"고 간증했다.

채무를 해결하니 이자 변제 지출이 없어 종잣돈을 만들었다. 이때 모아놓은 돈으로 시작한 '흙표흙침대' 사업이 성공을 거뒀다. 현재 백화점 4곳을 포함해 6곳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변창갑 장로는 최근 한국 국제기드온협회를 통해 성경 보급 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변 장로는 삶의 굴곡에서 깨달은 진리인 겸손과 절제를 항상 되뇌이고 있다. 맘몬의 유혹을 떨쳐버리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한다. 슬하 2남 1녀에게도 이 부분을 항상 강조하고 가르친다.

변 장로는 최근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사역과 감리교 미자립교회를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바쁜 중에도 하나님 일을 '풀타임'으로 하는 것만큼 영광되고 기쁜 일이 없다고 말하는 그다.

변창갑 장로는 경제적으로 고난에 처해진 이들에게 자신의 간증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에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솔직히 지금도 내 마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밧줄에 묶여 떠나지 못하는 배처럼, 내 방법과 생각에 얽매여 결단이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한다. 그래서 기도로 단련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만 붙들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는 걸 깨닫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다 누리게 되기를 바라며 모든 존귀와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린다"고 강조했다.

신동하 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