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목사님, 그리고 추어탕

미꾸라지 목사님, 그리고 추어탕

[ 현장칼럼 ]

이상록 관장
2024년 02월 23일(금) 09:29
몇 주 전, 창동염광교회 장애인부에 출석하는 청년 친구와 함께 그동안 미루고 미루어 왔던 추어탕을 함께 먹으러 갔다. 그날 그 친구와 함께 드디어 추어탕을 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참 좋아졌다.

그 친구에게 나는 '미꾸라지 목사님'이다. 그 친구가 나를 볼 때마다 '미꾸라지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10여 년 전 꼬마였던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여름 계절학교 '사랑의 교실'의 물놀이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창동염광교회 장애인부는 방학기간 동안 지역의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모여 약 2주간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며 신나게 노는 '사랑의 교실'이라는 계절학교를 운영했었다.

그해 여름에는 대나무 물총 만들기, 물총싸움, 비누 방울놀이, 물풍선 던지기, 수영 등 다양한 물놀이를 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꾸라지 잡기'였다. 이런저런 체험이 부족했던 장애인 친구들을 위해서 물놀이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을 해주고 싶었던 우리는 교회 앞마당과 주차장에 우리들만의 워터파크를 만들었다. 100여 명의 장애인 친구들이 교회의 물놀이장 이곳, 저곳을 돌아가면서 체험하며, 하루 내내 참 신나고 재미있게 놀았었다.

친구들은 그 중 '미꾸라지 잡기'를 가장 재미있어했다. 교회 사택 주차장에 큰 풀을 만들고,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다가 풀어놓고 미꾸라지 잡기 놀이를 했는데,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무서워했던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이 미꾸라지를 잡아서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관심을 보이고 하나둘 잡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감이 생겨서 금방 미꾸라지를 잡고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었다.

친구들은 이런 새로운 경험을 너무나 좋아했고, 이런 경험을 처음 한 친구들에게는 정말 좋은 추억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나 지적장애와 저시력 장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이 친구에게는 그날의 미꾸라지 잡기의 경험이 참 특별했었던 같다. 그 친구 어머니의 말로는 집에서도 몇 번을 추억으로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 "목사님의 이름을 잘 모를 때에도 미꾸라지 목사님"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아직도 나를 '미꾸라지 목사님'으로 기억하고 있고, 또 늘 "이상록 목사님, 미꾸라지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꼬마였던 그 친구는 이제 훌쩍 커서 훌륭한 장애인 수영선수가 되었다. 아마도 그때 물과 친했던 기억이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나름 짐작해 보았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도 선뜻 동의를 해 주셨다. 그런 친구가 1~2년 전부터는 교회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이상록 목사님, 미꾸라지 목사님"이라고 부르면서, 목사님과 꼭 추어탕을 함께 먹으러 가고 싶다고 했다. 미꾸라지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목사님과 미꾸라지와 관련된 추어탕을 먹어야 한다고 어머니에게 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참 대견하게도 그 친구는 나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번 돈으로 목사님께 추어탕을 꼭 사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가 참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말로만 약속하고 지나왔었는데, 마침내 그 친구와 함께 추어탕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함께 추어탕을 앞에 놓고 기도하려는 순간, 친구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다고 하면서 식사기도와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그 순간 무엇인가 모를 감사와 울림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작은 경험들이 우리 친구들에게 이렇게 큰 추억과 행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이제 추어탕은 나에게 이야기가 있는 소울푸드, 최애 음식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처럼, 교회가 장애인 친구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와 '공간'을 많이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가족들은 다양한 이유와 장벽들(심리적·물리적·문화적 장벽 등)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을 해보기 어려울 때가 참 많은데, 교회공동체가 장애인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 간다면,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참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장애인 친구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누며 서로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믿음의 공동체·사랑의 공동체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상록 관장 /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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