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내교회 노명석 장로의 삶과 신앙

주내교회 노명석 장로의 삶과 신앙

[ 기획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9년 10월 24일(목) 11:39
교회를 남녀가 모여 이성교제나 하는 '연애당'이라고 폄훼하며 멀리하던 이가 있었다. 그런 그가 교회를 다니는 여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됐다.

경기도 양주에서 70명 직원을 둔 섬유업체인 '(주)한결섬유'를 운영하는 노명석 장로(서울강북노회 주내교회)는 신앙을 갖게 된 배경이 드라마틱하다. 결혼 승낙을 얻고자 처가에 임기응변식으로 "교회를 가겠다"고 말한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귀결됐다.

노 장로는 전북 장수에서 전통적인 제사를 지내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복음은 접할 기회가 없었고, 성인이 될 때까지 교회도 가본 적이 없다.

건강한 체력을 타고난 그는 청소년기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며 운동에 남다른 두각을 보였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운동선수였다. 운동 친구들과 어울리다 교회 가는 친구들이 지나가면 "예배당 가냐? 아니면 연애당 가냐?"라며 놀리곤 했다.

공부는 싫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급기야 고등학교 때 집에서 한참 떨어진 부산까지 가출을 했다.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어서 였다.

"중·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완전 고삐 풀린 망아지였습니다. 부모님 속을 엄청 썩혀드렸죠."

대전의 한 시장에서 옷 도매상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병역을 전투경찰로 입소했다. 드디어 회심의 순간이 그에게 찾아왔다.

전남 영광경찰서 소속으로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훗날 부인이 된 김정숙 권사가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옆을 지날 때 한눈에 반했다. 당시 김 권사는 임파선염 치료를 위해 어머니와 한의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다짜고짜 전화번호를 물어봤으나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둘을 맺어주려 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전북 고창군 대산면에서 조그만 방을 얻어 생활하던 노 장로가 시장 가는 길에 교회로 향하던 김 권사를 마주쳤다.

노 장로는 "어찌나 반갑고 놀랍던지 천생배필이라 생각했다"며 "결국 집을 알아내고 교제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성수동의 염색공장에 취업한 그는 장거리 연애를 접고 결혼을 하고자 처갓집에 승낙을 받으러 갔다. 장모의 대답은 "교회를 다니면 허락하겠다"였다.

일단 "알겠다"고 한 후 결혼에 성공한 노 장로는 신혼 초에는 교회 다니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에 잔업이 있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교회를 요리조리 피한 세월이 10년이다.

'무늬만 성도'였지만 선교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봉급 16만원 시절 빠듯한 형편에도 부인 김 권사는 성경책에 항상 십일조를 끼워두었고, 노 장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 시기, 신앙의 조언자 역할을 해준 한 장로를 만나며 서서히 신앙이 끓어올랐다. 그 무렵 아들이 지적장애를 앓고 다리가 펴지지 않아 수술을 여러 차례 진행하며 고난이 있었지만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며 겸손하고 낮아지는 법을 배웠다.

염색공장 공장장으로 있던 노 장로는 13년 전인 46세에 개인사업체인 '(주)한결섬유'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며, 믿음으로 올곧게 간다"는 신앙심이 녹아있다.

사업을 시작한지 3개월부터 흑자로 돌아설 만큼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4년 후 공장에 큰 불이 나며 80억원 가량을 손해보는 과정에서 보상은 10분의 1밖에 못 받았다.

노 장로는 "분명 큰 손해를 봤는데 담담했다"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기계가 있던 창고는 멀쩡하고 원단창고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원단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노 장로가 섬기는 주내교회에서는 기도로 재기를 응원했다. 당시 다른 교회에서 주내교회로 옮긴 지 얼마 안된 시기였는데, 평소 섬김을 실천하던 노 장로를 긍정적으로 지켜보던 성도들이 너도나도 기도의 후원자가 됐다.

노 장로는 "주내교회 신현대 목사님과 교역자님들, 성도님들이 기도해 준 덕분에 용기를 많이 얻었다"며 "하나님께서는 짧은 시간에 회복시켜 주셨다"고 간증했다.

주내교회 경로대학장인 노 장로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중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도들에게는 이 부분이 큰 본이 되고 있다.

노 장로는 "효도를 해보려고 할 때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교회에서 어르신들을 보면 친부모님처럼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노 장로는 복음의 빚을 갚은 심정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밀한 가운데 장학금 지원과 해외선교지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개인적인 선교를 하며 교만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스스로 채찍질하고 있다. 그런 그가 교회 내에 장학회를 만들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내가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그런데 청소년들 중에 재능이 있지만 돈 때문에 꿈을 접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아낌없이 섬기고 싶은 그에게 부인 김정숙 권사는 든든한 동역자다. 동일한 믿음의 분량을 갖고 있어 선교에 삐걱거림이 없다.

노 장로는 "아내는 선교에 주저하거나 아끼는 마음을 아예 갖지 말 것을 자주 이야기 한다. 돕는 배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노 장로는 선교를 하며 계속해서 마음속에 되뇌는 성경구절이 있다. 로마서 8장 37~39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노명석 장로는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도우시며, 그의 사랑 안에서 항상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고자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 장로는 교회중직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최근 절실히 느낀다면서 "한국교회가 교세 감소와 분열 등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당회원인 장로로서 하나님나라와 의를 위해 힘쓰며 십자가 복음으로 영혼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신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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