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비극이 마지막엔 해피엔딩이 되도록"

"코로나의 비극이 마지막엔 해피엔딩이 되도록"

[ 독자투고 ] 필리핀 선교사의 코로나 단상(斷想)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1년 05월 25일(화) 12:55
전 세계를 강타중인 코로나 사태는 동남아 선교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필리핀 전역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며 대부분이 빈민들인 우리 선교지 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점, 두테르테 정부는 필리핀의 얼굴 격인 마닐라 지역과 코로나 청정지역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도시를 강력 폐쇄했고, 공항 문마저 굳게 닫으며 코로나 확산을 조기 차단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저 애꿎은 서민들만이 이 긴 세월동안, 가족들이 굶주림에 몸 소리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인생의 가장 고통스런 '마라의 시간'을보내야만 했는데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당시 우리 가정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마치 앵벌이를 하듯 후원교회에 '쌀 동냥'을 호소했었다. 한국교회도 초기엔 선교지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구호에 적극 동참해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의 시간이 길어지고 한국교회 역시 여러모로 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후 '선교'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의 후순위로 밀려나는 모양새가 되었다.

올 2월 들어서면서 필리핀의 코로나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필리핀도 인도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할 것이란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오자 위기를 느낀 필리핀 정부도, 4월 들어서는 다시금 고강도의 폐쇄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는데 바로 이 기간 우리 선교지에선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지난 4월 초, 유래 없는 강력한 '락다운'이 다시 시작된 지 이틀 후 이 마을 청년인 27세의 리키는 코로나로 '의심'이 될 만한 고열증상을 보였고, 소속 시(市) 공무원들은 코로나인지에 대한 확인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이 순박한 청년을 숲속의 한 빈집으로 끌고 가 죄인처럼 감금을 하고는 집밖으로나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다고 한다. 물론 마을의 입구도 봉쇄하여 마을 사람들의 출입도 통제하였는데 이것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코로나 차단 방식이다. 이 청년은 홀로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8일 만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 리키라는 청년은 우리가 '희망나눔농군학교' 건축공사를 할 때 근로자로 발탁해 허드렛일을 돕게 했던, 오른발에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던 청년이다.

가난한 나라의 지독히도 궁색한 집안에서 태어난 죄로, 검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죄인처럼 홀대받으며 외로이 죽어가야 했던 이 젊은이의 죽음은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우리 선교지의 가슴 아픈 자화상이다. 어쩌면 이 보다 더 처참한 일도 또 다른 어느 선교지에선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사태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가끔씩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만들어 내고 있다.

선교사 훈련을 함께 받으며 의형제의 연을 쌓았던 케냐의 선교사님이 코로나 확진 후 불가 일주일 만에 주님 품에 안기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위험한 아프리카 험지를 끝까지 떠나지 않았던 이광호 선교사님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좋아했던 형님이요, 선교사의 표상이셨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생명의 위기에 처해 있던 파키스탄의 이준재 선교사님을 살리기 위해 2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선교지로 '에어 엠뷸런스'를 띄운 명성교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저런 논란을 떠나 적어도 자신들이 후원하는 선교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교회 측의 진심에 선교사의 한사람으로써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 천국에 가신 이 선교사님과 그 가족 분들도 그러셨을 것이다. 참 잘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이 모두가 코로나사태가 만들어 낸 선교지의 이야기들이다. '코로나라는 강도'는 너무나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고 있다.

운명적으로 가난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선교지의 작은 이들에겐 이젠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다. 뒤엔 천 길 낭떠러지가 있을 뿐이다.

이제 교회밖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나서서 힘을 내 줘야 한다. 코로나라는 너무도 힘센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이제 마지막 숨만을 할딱거리는 선교지의 민초들에겐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안'이 꼭 필요한데 우리 한국교회가 그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가 가져온 그 과정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할지라도 그 마침만은, 아름다운 해피엔딩 스토리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우리 한국교회가 발 벗고 나서주시길 간절히 호소해 본다.



이광재 목사

필리핀 총회파송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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