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천사들의 따스한 날갯짓

숨은 천사들의 따스한 날갯짓

[ 현장칼럼 ]

이금복 국장
2023년 01월 20일(금) 00:10

이금복 국장

연말이 되면 얼굴 없는 천사들의 기부 행렬이 뉴스에 종종 보도된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오랜 기간 차곡차곡 모은 현금을 두고 가기도 하고, 겨울을 따스하게 날 수 있는 방한용품이나 생필품 등을 기부하는 이들도 있다.

본부에도 지난 연말,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이가 기부금을 전해왔다. 5년 전, 본부를 통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기증인으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은 이규호 씨다. 어린 시절부터 신장이 약해 투병생활을 해온 그는 고등학교 시절 신장이 모두 망가져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온 몸의 피를 꺼내어 기계에 넣은 후, 노폐물을 거르고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는 치료는 당시 10대였던 이 씨가 감당하기에는 버겁고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틀에 한 번, 신장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평생 치료를 이어가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에 남들 같은 평범한 일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20년 넘게 견딘 끝에, 그는 40대가 되어서야 혈액투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투병 기간 중에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몇 차례 수술 시기를 놓친 그는 신장이식 후 본인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본부에 기부금을 전해왔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가 품은 마음의 크기가 깊고 넓어 매번 이 씨의 기부금을 전달받을 때면 내 속에서 감동이 일렁인다. 건강을 되찾은 후, 그는 투병하느라 가보지 못한 곳, 투병하느라 먹지 못한 것, 투병하느라 해보지 못한 일 등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행복으로 채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대신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했다. 일상 회복 후, 얻게 된 적은 수입에서 일부를 나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돈을 차곡차곡 모아왔을 그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이유다.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다른 환자들도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한 그 기부금은 금전적인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이다. 기나긴 질병과의 사투 중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원망 대신, 오랜 기다림 끝에 선물 받은 생명이라 더 귀하다는 마음을 가진 그가 나에게는 숨은 천사 같다.

매해 2~3천 명 씩 장기이식 대기 환자들이 늘어나고, 그중 하루에 7.5명이 이식을 받지 못해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장기기증률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적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무 오랜 기간 질병으로 고통 받지 않고 얼른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나 한 사람의 바람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씨처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삶속에서 차곡차곡 모으는 숨은 천사들이 점점 더 늘어날 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장기기증 희망등록률 3.2%, 이식대기 환자 4만 5천 여 명, 2022년 실제 뇌사 장기기증자 405명…. 이 숫자가 가리키는 사실은 도움과 기적이 필요한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며,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과 포근한 손길이 더해지기를 소망한다. 그 손길은 장기기증 희망등록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향한 기부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지 숨은 천사들의 따뜻한 날갯짓이 더욱 많이 일어나 아름다운 나눔의 바람이 곳곳에서 이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를 통해 이 씨와 같은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고, 감사한 마음으로 또 다른 이를 구하는 일에 함께하는 기적의 연결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금복 국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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