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맞은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

'희년' 맞은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

[ 땅끝편지 ] 독일 허승우 선교사<7>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3년 02월 22일(수) 14:52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는 교단을 초월해 교제하며, 고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 서 왔다.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는 교단을 초월해 교제하며, 고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 서 왔다.
2023년은 독일과 한국이 수교한 지 14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한국과 독일이 140년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특별히 관계였던 것 같지는 않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가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그리고 1949년에 독일연방국가(서독)와 독일민주국가(동독)로 분단국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우리나라도 1948년에 남북이 독일처럼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41년 만에 하나의 나라로 통일이 되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지만, 우리나라는 분단된 것도 슬픈 일인데 3년 동안 전쟁까지 하면서 깊은 상처를 안고 지금까지 정전상태로 남아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갈등과 모든 악의 근원이기에 우리 한국교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첫 기도 제목이며 과제는 고국의 평화 통일이어야 할 것이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여 현재는 다시 유럽의 최강국, 중심국이 되었다. 독일은 전쟁으로 부족해진 일손을 채우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많은 손님노동자들을 초청하였다. 독일에 가장 많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튀르키예 사람들이다. 현재 500만 명의 튀르키에인들이 독일에 살고 있다고 한다. 6.25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도 재건을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였다. 그러던 중 독일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광산노동자들과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1960년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광산노동자 8000명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1만 명이 독일에 왔다. 그들의 첫 노동 계약은 3~5년이었고, 그 기간을 마친 분들은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미국이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간호사들 가운데는 많은 분들이 은퇴까지 일하였다. 최근에는 은퇴하신 후에 살기 좋아진 우리나라로 귀국하시는 분들이 많다. 남해에 독일마을을 만드신 분들이 그분들이다.

독일 개신교회는 광산노동자들과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의 영적 돌봄을 위해 한국 목사들을 한국에서 청빙하기로 하였고, 독일 개신교회와 교류하고 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목회자들을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베를린, 함부르크, 루어 광산 지역(뒤셀도르프, 보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첫 목회자들이 청빙되었다. 남한 보다 더 넓은 바덴-뷔르템주와 바이에른주의 남부지방에 속한 우리 교회를 위하여 1976년에 김종렬목사님께서 첫 담임목사님으로 부임하셨다.

독일 개신교회와 한인교회는 협정서를 맺고 특별한 협력 관계를 해 왔다.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는 이러한 관계 가운데 있는 한인교회들의 연합모임이다. 2023년 현재는 8개 교회가 소속되어 있다. 남부지방한인교회(이권호 목사, 예장통합), 뉘른베르크-에얼랑엔한인교회(허승 우목사, 예장통합), 기독교복음한인교회(이요한 목사, 예장통합), 독일라인란드지방한인교회(김동욱 목사, 기장), 베를린기독교한인교회(조성호 목사, 기장), 라인마인한인교회(강민영 목사, 기장), 뒤셀도르프한인교회(이권행 목사, 기감), 함부르크한인교회(김광철 목사, 기장)이 멤버들이다.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는 1979년 4월 27일-28일, 프랑크푸르트 크리스투스-임마누엘 교회에서 당시의 회원 교회들이 첫 모임을 가지면서 창립되었다. 현재는 매년 10월 첫째 주에 교회대표(총대)들이 총회로 모이고 있다. 2022년에 44차 총회로 모였다. 대부분의 회원 교회들이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회를 창립할 당시 성도들은 거의 모두 20대, 30대의 기독 청년들이 주축이 되었다. 한인 교회 내에 유학생들과 상자주재원들이 있었지만, 기독교재독한인교회 소속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광산노동자와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협의회 교회들은 고된 육체노동을 하였으며,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타국 생활을 하는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들도 있었지만, 외로운 청년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한국의 음식도 함께 먹고, 서로 사귐을 갖는 다양한 목적의 공동체가 되었다.

협의회 교회 목사님들은 고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70, 80년대의 고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독일 사회에 한국의 현실을 알리고, 연대하여 줄 것을 촉구하였다.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는 통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지난 40년 간 협의회 회원교회들은 매년 북한 동포들과 어린이들을 위하여 밀가루, 분유, 식용유를 보내 왔다. 독일 교회는 조선그리스도교회연맹을 초대하여 남북한 연합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하였다. 현재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모든 것이 중단된 안타까운 상태에 있다.

5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협의회 회원 교회 성도님들과 미래도 변하고 있다. 협의회는 독일에서 태어난 2세들을 위한 신앙 교육과 은퇴하신 분들을 위한 복지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해 열심을 다하려고 한다. 고국교회의 헌신과 기도와 사랑에 늘 감사드리며 동시에 독일에서 고국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드린다.



허승우 목사 / 총회 파송 독일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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