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나, 기대를 채워주는 너

기다리는 나, 기대를 채워주는 너

[ 독자투고 ]

이봉호 목사
2023년 10월 09일(월) 00:10

이봉호 목사

올해는 유난히 가을을 맞는 것이 오래 걸리는 기분이다. 입추를 거쳐 처서와 백로를 지나도 한참 지났건만, 낮 기온은 여름에 가까운 더운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된 것은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봄으로 과일과 식물 그리고 내가 기다리는 밤나무에 밤이 좀 더 잘 익게 하기 위함일 것'이라는 느긋한 맘을 가져 본다.

9월 보름쯤 멀리서 쳐다본 밤나무가 바람에 살랑살랑 거리며 내 눈을 집중시켰는데, 가까이서 보니 조금씩 벌어진 것이 하나, 둘 보이더니 하루가 다르게 알밤 모양을 갖췄고, 결국 나에게 선물을 안겨 주었다.

한 번의 선물로 족하건만, 매일매일 일정 시간에 나를 그곳으로 오란다. 결국, 난 그 밤나무의 말에 순응하고, 아침을 기다리게 됐다. 첫날 주우러 간 알밤이 기분을 엄청 좋게 한 것은 그 알밤이 반질반질하며 윤기가 나기도 하고, "나 여기 있지요~" 하며 숨김 없이 내 눈에 살짝 나타나더니 손에 잡히는 순간 맘까지 좋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날 받아 든 선물을 흐르는 물에 씻어 적당한 물을 붓고 일정 기간 삶았더니 먹음직스러운 밤이 됐다. 하나 입에 깨무는 순간 똑하고 반으로 갈라지기에 이쪽저쪽 빼먹는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렇게 첫날부터 매일 아침을 기다리는 나는 잠자기 전 잠시 생각에 잠기며 내일 새벽을 기다리게 됐는데 '내일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내가 받아야 할 선물을 객이 받아 가지는 않을까?'하는 여러가지 생각에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뒷날 그 시간에 찾아가 보면 어김없이 나를 반겨 맞았고, 나의 맘을 흡족케 해주었는데, 하나, 둘 주우며 "고맙다, 고맙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봉지에 담는 내 손놀림은 바쁘기만 했다.

다 주었다 싶어 뒤돌아서며 밤나무 밭의 대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투두둑하고 떨어지기에 얼른 뒤돌아보니, 좀 전에 주운 그 밤나무가 나를 유혹하는 것이다. 가지 말고 자기와 더 놀다 가란다. 선물을 더 줄 테니…. 나는 "알았다"하고 다시 밤나무 밑으로 가서 이리저리 살피며 떨어진 밤은 줍고, 송이채 떨어진 녀석은 발라서 담게 됐는데…. 이 밤나무 친구가 하는 말이 세상에도 보너스가 있는데 추석 보너스로 더 주는 거란다. 난 행운아다 밤나무에게 보너스 알밤을 더 받았으니 말이다.

사실 알밤은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한다. 내가 밤나무에게 인사하고 알밤 선물을 받아 가는 날이면, 미소 한가득 돼 받아드는 아내의 맘은 기쁨 두 배가 되고 얼른 삶아 맛있다고 감탄을 연발하며 입으로 넣는다. 혼자 먹기 미안한지, 간혹 나에게 권하며 하는 말 "하나 먹어봐요. 너무 맛있어요." 알밤을 발라 내 입에 넣어주는 아내의 사랑스런 손길마저 느끼게 된다. 근간에 어떤 사연으로 나와 아내는 조금씩 신경전을 벌이며, 밀고 당기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알밤이 우리 둘 사이를 풀어주는 중재자로 나선 셈이다.

오늘 아침에도 내 맘을 실망시키지 않고 흡족하게 채워준 알밤은 내일도 그 자리에 그리고, 그 주위에 맴돌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주운 알밤을 나만 먹을 것이 아니라 주일날 교회 나온 교인들과 함께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유난히 교회를 위해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섬기는 장로님, 그리고 과묵하지만 주일마다 예배자의 자리에서 물질로 섬겨주는 집사님, 이분들에게는 별도의 봉지를 만들어 전달하리라 생각하니 마음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나는 주워담은 알밤을 생각하며 분명 나 역시도 밤나무로부터 받은 것을 주워 담는 수고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나눔을 할 수 있으니 엄청 부자인 것같고 행복하다.

내가 줍는 알밤은 흔히 말해 토종 알밤인데, 이것을 줍기 위해 교회 옆 산으로 가야 한다. 산에 오르면 산은 항상 말 없는 친구가 되어 준다. 또한 밤을 줍기 위해 분주하면 이마에 땀이 맺히기도 하는데, 때마침 눈치 빠른 산이 바람을 일게해 시원함도 주고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하니 일거양득이다.

가을은 푸른 하늘과 선하게 다가온 태양이 있고, 이곳저곳에서 바람을 일게 하는 나무와 꽃들이 나에게까지 기쁨과 감사를 전해주는 좋은 계절이다. 밤나무가 나에게 기다림과 채움을 주었듯이 가을은 그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흡족하게 채워주는 계절임을 느낀다.

사람은 간혹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기다리는 존재다. 성경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 오실이가 곧 오시리라." 그렇다. 예수님은 기다리는 나에게 채워주시는 분임을 난 믿고 알기에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가을 그분이 내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주님을 만나면 그분과 진한 데이트를 통해 내면을 채워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싶어라.

이봉호 목사 / 새구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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