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김복동이다

우리가 김복동이다

[ 기자수첩 ]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2019년 08월 19일(월) 07:40
지난 14일은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자, 1400회 수요집회가 열린 날이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옛 일본대사관 앞 거리는 시민 2만 여 명으로 가득 찼다.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려 뙤약볕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웠지만, 참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를 주목하며, 일본의 법적 배상과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삼일만세운동 현장을 방불케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36도에 달하는 한여름 무더위 기세를 눌렀다.

각자가 준비한 피켓들만 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마음이 구구절절히 느껴졌다. 아니, 참가자 한명 한명이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1400회를 이어온 집회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닌, 국민 모두가 함께 하고 있고,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큰 울림을 줬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앳된 청소녀들이 대거 참여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만 믿고 일본군의 손에 끌려갔던 나이가 대략 13~17살이었으니,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이 집회에 모인 소녀들의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들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정신적 고통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날개짓 하기를 염원하는 상징으로 노란 종이 나비를 머리, 가슴, 어깨에 달고 '내가 김복동이다'란 메시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진정한 하나됨이란, 기꺼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입이 되어주고, 그들의 몸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걸, 청소녀들은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평소 드러나지 않았던 힘없고 평범한 민중이 강한 결집력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배상문제로 촉발된 한·일 간 외교분쟁이 무역분쟁으로 번지며,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들은 1919년 독립운동을 이어간다는 심정으로 2019년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떠나 국민 전체가 정의구현과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가는 이 때에, 일부 기업 대표와 정치권에선 친일 발언이 나와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당장 눈앞에 놓인 경제적 이익만 생각하는 일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의 눈에는 수요집회도, 불매운동도 소득 없는 '무지한 반항'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개인의 유익을 접어두고라도, 아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옳은 소리를 외치며 오늘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국민들의 모습이 독립운동가의 모습과 겹쳐보이는 것은 왜 일까?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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