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에게, "즐거움 느끼셨습니까?"

성폭력 피해자에게, "즐거움 느끼셨습니까?"

[ 기자수첩 ] 교회 내 성폭력 예방 교육 및 대처 시스템 필요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2년 03월 07일(월) 19:37
ⓒunsplash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상대 남성은 부인한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재판에서 판사가 여성에게 묻는다.

"그가 미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요?", "남편과의 잠자리가 즐거우신가요?", "사건 후 임신하셨는데, 강제로 임신할 수 없는 것은 과학입니다. 즐거움을 느끼셨습니까?"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답한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결국 여성의 남편과 성폭력 혐의의 피고는 결투를 벌인다. 승리하면 재판에서 승소하고 모든 증언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무죄한 사람의 편'이라는 전제 아래.

이는 14세기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상 마지막 법정 결투를 다룬, 리들리 스콧 감독의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 영화 내용이다.

영화에서 14세기의 비합리적인 재판 과정,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여성에 대한 차별,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봤다. 그런데 서슴없는 2차 가해와 용의자와 친밀한 관계인 판사(영주)를 보면서, '현재 한국교회는 이렇지 않다고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든다.

불과 5~10년 후 교회의 성범죄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흥행할 수도 있다. 그 영화의 내용은 이럴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그루밍), 성차별적 가부장제, 피해자에 대한 낙인, 피해 사실을 알리려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상처만 받는 성도.

그 영화의 명대사는 인자해 보이는 60대 남성이 피해자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성도님, 은혜로 덮어요. 순종이 제사보다 나아요. 교회가 평안해야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예방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기자인 내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이미 목회자들은 다 알고 있다.

지난해 전국 목회자 212명을 상대로 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와 지앤컴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목회자 2명 중 1명(51.9%)은 '목사가 금하거나 조심해야 할 사항'으로 '성범죄·성적 스캔들'을 골랐다.

목회자 대부분(93.7%)은 '한국교회 내 성범죄 대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못하다'라고 했고, 이에 대한 이유로 '사건을 덮는데 에만 급급한 것 같다'(35.6%),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공적 기구가 없는 것 같다(29.6%)'라고 답했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 한국교회 내 성폭력, 성범죄 관련 예방 교육이 활발히 시행되고, 교회 내 대처 시스템이 당장 갖춰져야 한다.


최샘찬 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