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무너진 마음에 작은 희망 되길
2023.12.05 08:43

【 튀르키예 말라티아주=김동현 기자】 "가장 힘들 때 옆에 함께해줬던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2월 6일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하며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튀르키예. 말라티아주는 지진이 강타했던 튀르키예 동부 지역 도시 중 하나다. 이번 지진으로 말라티아주의 건물 약 3만 5천 채가 피해를 입었고, 시민 80만 명 중 20만 명 가량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들은 붕괴 위험 때문에 대부분 철거 후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 20만 명의 이재민들은 텐트를 전전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언제 다시 지어질지 모를 자신들의 집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본 교단은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을 접하면서 지진이 발생한 2월부터 발 빠르게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구호 전국교회 모금 캠페인'을 실시하고 하타이주 이스켄데룬시에 컨테이너 50동을 지원하는 등 튀르키예현지선교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중·장기 구호사업'을 진행해왔다. 이번 '말라티아 PCK 한국마을'은 이 중·장기 구호사업의 일환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말라티아주 이재민들이 새로운 거주지가 건축되어 들어가기 전에 임시거처로 활용할 컨테이너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와 더불어 상담, 문화강좌, 직업교육 등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센터'를 내년 초 마을 내에 설립해 이재민들의 지진 트라우마 극복 및 일상회복을 도울 예정이다.

올해 6월 총회 방문단과 현지선교사회가 현장을 방문해 부지를 선정하고, 이후 사업을 추진해온 결과 7월 착공 이후 약 5개월 만에 컨테이너 202동이 완공됐다. 총 202동 중 200동에는 이재민이, 2동에는 관리자가 입주할 계획이다. 현지선교사 문OO 목사는 "과거 1999년 튀르키예 대지진 때도 컨테이너 임시 거처가 마련됐었는데 당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었다"며 "이번에는 관리자가 마을 내 상주하며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도록 하고, 또 관리자를 남녀로 각각 구성해 마을 내 남성과 여성의 의견이 모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PCK 마을에는 현재 약 70여 가정이 입주해있으며 나머지 가정도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정이다. 입주 예정인 가정 중에는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유가족 10가정도 포함돼 있다.

지난 11월 28일 '말라티야 PCK 한국마을(이하 PCK 마을)' 내부에서 진행된 준공식에는 총회 사회봉사부 부장 박귀환 목사와 총무 오상열 목사, 직원 조성원 전도사가 현지를 방문해 참여하고, 튀르키예현지선교사회 임원들이 동행했다.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단과 취재진은 인천에서 이스탄불로 11시간, 이스탄불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꼬박 2시간을 날아 말라티아에 도착했다.

오랜 비행 끝에 마주한 말라티아는 여전히 지진의 상흔이 선명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시내 곳곳에 금이 가 있는 건물들과 폭삭 무너진 채 지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도시 일각에서는 건물을 폭파해 철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지 10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지진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하게 했다. 지진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는 시내를 벗어나 도착한 PCK마을 내부의 분위기는 사뭇 조용했다. 낯선 외국인들의 등장에 호기심이 동한 아이들이 취재진 근처를 맴돌며 웃음을 띠었지만, 어른들의 표정에서는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진은 건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무너뜨린 것 같았다. 방문단과 면담한 현지 긴급재난지원청(AFAD) 고위 관계자는 "지난 대지진 이후 여진이 계속되고 있고 특히 최근 11월 23일에는 규모 5.3의 큰 지진이 발생해 많은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집이 멀쩡한데도 임시 거처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며 아직 지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지의 상황을 전했다.

총회의 지원으로 마련된 컨테이너는 거실, 안방, 주방, 화장실의 구조로 이뤄져있었다. 집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춰져 있어 생활에 큰 불편은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계속되는 여진에도 안전한 듯 보였다. 총회는 냉난방기, 온수기, 인덕션 등을 지원해 다가오는 겨울에도 이재민들이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 방문단과 튀르키예 한국대사, 말라티아 주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준공식에서 박귀환 부장은 한국과 튀르키예의 우정을 강조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을 격려했다. 박귀환 부장은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 꽃다운 튀르키예 청년들이 한국 땅에 와 숭고한 피를 흘렸다. 그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킬 수 있었고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않고 이번 대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에 보답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어 박 부장은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작은 꽃이 따뜻한 봄을 알리듯 우리가 전하는 작은 사랑과 정성이 이재민들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로 피어나길 소망한다"며 이재민들을 격려했다.

말라티아 주정부측은 지진 직후 단발적인 도움을 주고 떠난 단체들과는 달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임시 거주지를 마련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스만 쿠랄 말라티아 부도지사는 "지진 발생 직후 생필품과 의약품을 지원해주고 단기적으로 긴급구호를 해줬던 팀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 장기적으로 우리를 지원해주는 팀은 한국팀 뿐"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말라티아는 튀르키예 내에서도 외진 지역이라 도움의 손길이 닿기 쉽지 않다고 한다. 현지선교사 김OO 목사는 "이곳 말라티아는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튀르키예 사람들도 거주민이 아닌 이상 잘 오지 않는 도시다. 튀르키예 안에서도 깊숙하고 외진 곳이라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외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이곳까지 본 교단이 찾아와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돕는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준공식이 끝난 후 박귀환 부장과 한국측 인사들은 각 가정을 방문해 튀르키예 현지선교사회가 준비한 식용유, 휴지 등 생필품들로 구성된 선물을 전달하고 격려했다. 귀가 안 들리는 할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는 모녀는 "이렇게 찾아와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방문단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제 이 말라티아 PCK 한국마을에서 이재민들은 삶을 할퀴고 간 지진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긴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총회가 건넨 관심과 온정이 힘겨운 상황 속에 있는 이재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작은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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