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나누는 애능중앙교회

장애인과 나누는 애능중앙교회

[ 우리교회 ] 중도시각장애인 안마봉사팀
"장애인들도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아요"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07월 20일(금) 10:35
애능중앙교회 중도시각장애인 안마봉사팀이 여교역자안식관을 찾아 봉사하고 있다.
애능중앙교회 중도시각장애인 안마봉사팀이 여교역자안식관을 찾아 봉사하고 있다.
지난 12일 용문에 위치한 여교역자안식관 1층 방 곳곳에서는 아픔을 호소하는 신음소리와 유쾌한 웃음소리가 묘하게 뒤섞여 새어나왔다.

서울서노회 애능중앙교회(장찬호 목사 시무) 중도시각장애인선교회 안마봉사팀이 한달에 한번 이곳에 오는 날이면 조용하던 여교역자안식관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진다.



#18년째 매달 안마 봉사



올해로 18년째 매달 셋째주 월요일마다 이곳을 찾아 봉사하고 있는 애능중앙교회 중도시각장애인선교회 안마봉사팀은 이미 이곳의 은퇴한 여교역자들과는 너무나도 친숙한 사이다.

"왜 몸관리를 또 안하셨냐"는 핀잔과 "지난달 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격려 등이 뒤섞여 방안에는 수다꽃이 핀다. 한 봉사자가 스트레칭을 시키다가 여교역자의 손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자신의 배에 닿자 "전도사님, 자꾸 배만지지 마요"하고 농을 던지자 방안에 웃음소리가 폭발한다.

한쪽 방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전국여교역자연합회 복지재단 이사장 김화자 목사에게 장찬호 목사는 "그동안 너무 일을 많이 하시고 고생하셔서 그렇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김화자 목사는 "우리 같은 은퇴한 여교역자들이 어디 가서 이렇게 수준 높은 안마를 받겠나. 이분들이 올 때마다 기력을 회복한다"며, "18년동안 자신들의 생활을 뒤로 하고 봉사하러 오는 애능중앙교회 봉사팀에게 얼마나 감사한 지 말로 다 못하겠다"고 인사했다.

장 목사는 "여교역자안식관 봉사는 2001년부터 7월 17일에 봉사를 시작했는데 그날이 제헌절이어서 너무 길이 막혀 집에 들어가니 밤 12시가 됐었던 기억이 선명하다"며, "교회를 위해 평생을 봉사하신 분들에게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어 참 좋다. 항상 기다려주시고 반겨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울산에서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최선호 성도(57세)는 "50살에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실명을 했는데 소문을 듣고 무작정 애능중앙교회를 찾아갔다"며, "울산에서 매주 서울로 교회 출석하고, 봉사팀에도 참여하는 저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정작 저는 정말 마음이 편하고, 하루 휴가를 하고 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16년간 매달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강해정 집사의 말도 비슷하다.

"기쁜 마음으로 와요. 피곤할 때 여기오면 오히려 피곤이 풀려요. 오가면서 교인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옆에 있던 천연옥 권사 또한, "시각장애인이라고 사회에서 항상 받기만 하는 우린데 하나님 주신 능력으로 이렇게 베풀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한다.



#중도시각장애인선교회, 교회 부흥과 봉사의 비결

애능중앙교회 중도시각장애인 안마봉사팀
1981년 8월 16일 창립된 애능중앙교회는 시각장애인인 김광환 목사에 의해 개척됐다. 2대 담임인 장찬호 목사는 1999년 11월에 부임해 19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부임 당시 60여 명이었던 성도는 현재 출석교인 3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중 시각장애인들이 약 200명에 이른다. 이렇게 교인수가 증가하게 된 비결에 대해 장 목사는 2000년 3월 중도시각장애인선교회를 조직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장 목사는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병환이나 사고에 의해 시력을 잃는다는 점에 착안해 중도시각장애인선교회를 조직하고, 이들을 위한 재활교육 및 직업교육을 실시했다. 생활 적응이나 생업을 위한 교육을 필요로 했던 이들은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교인 중에는 울산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 충북 영동 원주 횡성 춘천 등 원거리에서 예배 참석을 하는 이들이 많다.

3~7월, 9~12월 직업재활교육을 진행하고, 방학기간에는 3주 코스의 특강도 연다. 이 교육을 위해 초반에는 홍보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다 수용할 수 없어 홍보도 잘 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교역자안식관 이외에도 서울서노회 남선교회연합회 의료봉사에 3년째 동참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20년간 시각장애인 선교를 하고 있는 조인엽 선교사를 후원하고, 이외에도 볼리비아, 몽골, 아랍에미레이트, 필리핀 등 8곳의 선교지를 후원하고 있다. 지역의 경로대학을 방문하거나 강원도 평창과 경상북도 풍기의 농촌교회 등도 1년에 한번씩 찾아 봉사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이 비장애인보다 더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교인들은 음악에도 일가견들이 있다. 모든 공예배에는 찬양대가 서고 주일에는 실내악까지 연주한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나 여전도회전국연합회에서 중창제나 합창제를 개최할 때에도 이들은 단골 참가손님이다. 지휘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화음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끝으로 장 목사는 "우리 교인들의 특징은 모이면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아름다운 화합을 이루고, 장애인들은 새롭게 꿈꾸고 위로받는 곳이 바로 애능중앙교회"라고 자랑했다.


표현모 기자



"장애인 선교의 비결은 공감입니다"

애능중앙교회 담임 장찬호 목사
애능중앙교회 중도시각장애인 안마봉사팀


치료 받는 김화자 목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찬호 목사.
"장애인 선교는 공감대를 갖느냐 못갖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공감대가 없으면 장애인들과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 선교는 장애인이 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Incarnation)' 하셨듯이 장애가 없으면 장애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법이잖아요."

시각장애인들이 성도의 주축인 애능중앙교회 담임 장찬호 목사도 시력에 문제가 있다. 오랜 기간 그를 알고 지내는 이들조차 눈치를 못채는 경우가 많지만 생후 3개월만에 안질을 앓았던 그는 1979년 신학교 학부 4학년 때 시력이 갑자기 안좋아져 4년간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1996년에 개안수술을 해서 시력이 회복되었지만 지금도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당시 책을 읽을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믿지 않는 집안에서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꾸라는 압력을 많이 받았지요. 실의에 빠져 어려운 상황에서 구경 삼아 한맹교회를 갔는데 장애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늘 내 눈 좋아질 것을 위해서만 기도했지 장애인들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회개도 많이 했습니다."

이 방문을 계기로 장 목사는 1982년부터 1999년까지 한맹교회의 부교역자로 사역을 했다.

그는 "내가 정안인이면 시각장애인들이 벽을 느꼈을텐데 동질의식이 있어서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없다"며, "성도들과 잘 지내서 그런지 목회가 힘들다,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거의 없고 항상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교회에는 100여 명의 비장애인 성도도 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성도간 벽이 있었는데 장애나 비장애나 구별없이 잘 어울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델임을 강조하고, 성도들도 노력해서 지금은 잘 조화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성도들은 십일조 생활도 열심히 해 교회의 재정도 탄탄한 편이라고 말했다.

"애능중앙교회에 오시면 시끌벅적, 왁자지껄 늘 잔칫집 같습니다. 혹시 중도 시각장애를 얻게 됐거나 삶에 지치신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교회에 와보세요. 장애를 가졌지만 행복하고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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