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회복, 이웃사랑·복음전도 회복

일상회복, 이웃사랑·복음전도 회복

[ 11월특집 ] 위드코로나 시대에 교회의 과제 2. 위드코로나 시대의 복음전도

김선일 목사
2021년 11월 09일(화) 09:44
김선일 목사
위드코로나의 시대가 열리면서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종식되어가고 일상이 회복되어가던 1920년대를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한다. 경제의 성장 뿐 아니라 재즈를 비롯한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욕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신문명기술이 선을 보였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코로나의 종식을 바라보며 보상의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 하지만 펜데믹이 길었던 만큼 그로 인한 상흔도 길게 갈 것 같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의 K자형 회복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경제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내면적으로 겪는 고립감과 불안도 더욱 높아져 간다. 코로나는 격리, 단절, 거리두기로 인해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도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변화된 삶의 패턴이 1~2년 이상 지속되면 그것은 익숙한 생활양식이 된다. 모임 제한이 완화되고 언젠가 마스크를 벗더라도, 재택근무와 비대면 수업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밀집모임이나 회식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편리함과 개인적 자유의 효용성을 이미 맛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나노사회', 혹은 '사회의 분화'라는 말로 묘사되는데, 앞으로 혼자 살아가고 해결하는 시대가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욕구는 계속된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코로나 이후 우리 사회에 주어진 핵심 과제는 '공동체적 공감력'이라고 한다.

위드코로나 시대에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 또한 이러한 공동체적 공감과 돌봄이라는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1. 가장 먼저 교회는 이 전환의 시대를 위한 공동 기도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은 성령께서 하신다. 오순절 성령의 임재를 앞두고 교회가 "오로지 기도에" 전념한 것(행1:14)처럼, 코로나로 인해서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좌절에 처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실망을 주고 공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한다. 위드코로나가 '성령이 함께하시는 시대'가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전도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2. '돌봄으로서의 전도'를 모색해야 한다. 이는 육체적 돌봄과 영적 돌봄 모두를 의미한다. 일상의 회복이 많은 이들에게는 억압된 욕구를 분출하는 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일상은 이웃을 돌보며 섬기는 환대의 정신이다. 초대교회 성장의 원동력은 전염병에 걸리거나 버려진 낯선 자들을 돌보는 환대의 실천에 있었다. 환대는 전도의 문을 연다.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역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자, 복음의 진정성을 위한 발판이 된다. 위드코로나 시대에 우리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이웃에게 열려 있는 교회로 분명하게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3. 복음에 대한 적절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코로나 재난 속에서 기존 교인들도 신앙생활에 소홀해졌다고 하지만, 오히려 비종교인들 가운데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2017년 40%에서 2020년 49%로 늘어났다.(목회데이터연구소, '위클리리포트 91호')

필자는 최근 새신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상당수는 코로나 와중에도 교회를 찾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 어떤 이는 코로나로 인한 인생의 불확실성 때문에, 어떤 이는 곁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실함을 보고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는다. 하나님은 팬데믹 중에도 일하신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진실히 환대하며, 그들의 마음에 와 닿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4. 위드 코로나로 인해 예배 수용인원이 확대되지만, 여전히 공동식사와 같은 교제는 제한된다. 이제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선순환을 살려야 할 때가 왔다. 교인들의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작은 모임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봉쇄기간에 두 세 가정이 서로 안전하게 지속적으로 만나는 10명 이내의 소셜버블(social bubble)을 허용해서 공동체적 필요를 해소한 바 있다. 이를 차용해서 미션버블(mission bubble)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두세 명이 특정한 몇 사람과의 지속적 만남에 헌신하는 것이다. 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일수도 있고, 동호회나 취미 모임일 수도 있으며, 가족 및 친척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들을 전도대상자로만 삼지 말고, 내가 먼저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이 되어주자. 그래야 나도 행복하다. 그들이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벧전3:15) 때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코로나의 창궐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도 힘든 시기였다. 교회의 많은 사역과 프로그램들이 멈춰야 했다. 한편으로 이는 교회의 본질적 과제에 단순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 톰 레이너는 코로나 상황에서 흥미로운 관찰을 했다. "폐쇄 기간 중에 많은 교회가 전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없는데 오히려 전도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하지만 바쁨의 함정을 생각하면 이것은 충분히 말이 된다. 이제 교회 리더와 교인들은 산머디처럼 쌓인 활동의 늪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같은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톰 레이너, '코로나 이후의 목회')

위드코로나로 인한 교회의 일상회복은 본래의 가치인 이웃사랑과 복음전도로 단순화되는 회복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선일 목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선교와문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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