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여기서 라면이라도 먹고 놀다 가"

"얘들아, 여기서 라면이라도 먹고 놀다 가"

[ 아름다운세상 ] 순천기독교청소년협회의 청소년 무료카페 '러브트리'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2년 10월 19일(수) 10:55
러브트리에서 라면을 먹는 학생과 이야기하는 박흥주 목사.
【 순천=최샘찬 기자】 교회학교에 청소년들이 많지 않다. 교사 세미나에서도 '애들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 밖에 관심과 도움을 받을 학생들은 여전히 있다. 교회는 이들을 어디서 만나야 할까?

순천시 중앙동에는 청소년을 위한 무료 카페가 있다. 교회 밖에서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사단법인 순천기독교청소년협회(순천CYA·회장:박흥주)가 2016년부터 마련한 공간이다.

청소년 무료 카페, '러브트리'는 지역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한다. 교회 출석 여부와는 무관하다. 비용도 무료다.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이나 시간이 남을 때 이곳에 들른다. 러브트리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컵라면과 음료, 씨리얼 등을 먹는다. 탁구대, 보드게임 등도 있어, 친구들과 놀거나 생일 파티를 할 때도 러브트리를 찾는다.

러브트리 입구.
이처럼 러브트리는 청소년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설립 배경과 관련해 순천CYA 회장 박흥주 목사는 "청소년들은 학교가 끝나고 PC방 아니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라며,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쉬고 놀다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편안한 공간과 간식을 제공하는 러브트리에서, 박흥주 목사는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 방문하는 학생들에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박 목사는 일부러 말을 걸지 않는다. 학생이 2~3개월 편하게 계속 방문하면, 박 목사는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며 한마디씩 건넨다. 그렇게 6개월 이상 된 학생들과는 라면 먹을 때 같이 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박 목사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교회학교에서 학생을 반기는 목회자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박 목사는 학생들에게 겉으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밥은 먹었느냐", "이번에 수시는 쓰느냐", "'길빵'(길에서 흡연하는 행위)하지 마라", 그리고 캔음료를 마시는 학생에게 "그냥 마시면 안 돼, 얼음이랑 같이 마셔야지"하면서 얼음컵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 학생들에게 '목회자'이기보다 편한 '동네 형' 같다.

학생들에게 애정이 있어 후원을 받고 사비를 털어가며 이 공간을 마련했지만, 박 목사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박 목사의 기다림과 배려다. 그는 "그 기간을 기다려주는 편이다. 최종 목적은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드러내지 않는다"라며, "그래도 가끔 교회 다니는 학생들이 신앙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러브트리에 쿠키를 가져와 박 목사에게 건넸다. 박 목사는 "저 친구가 제과제빵 관련 교육을 받는데, 어느날 가져온 쿠키가 너무 맛있어서 달란트라고 알려줬다"라며, "이렇게 자연스러운 진로 상담으로 이어져서, 이런 부분들이 보람 있다"고 말했다.

쿠키를 가져온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러브트리에 6개월 정도 방문하고 있다. 그 학생은 러브트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과 갈 데 없을 때, 여기 와서 라면도 먹고 놀고 탁구도 치고 그러죠. 비용이 무료여서 좋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할 것 없을 때 오기 엄청 좋은 곳이에요. 순천 지역 애들은 거의 다 알고 있어요. 항상 공짜로 먹고 있어서 감사해서 쿠키를 가져왔어요. 학생들은 돈이 별로 없는데, 배부르고 맛있게 먹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러브트리에 방문한 학생이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했다.
러브트리에서 박 목사와 친해져서, 신앙상담을 하고 교회에 나오게 되거나, 자퇴를 한 학생이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는 등 훈훈한 사례가 많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폭력과 절도 등 범죄에 연루된 학생도 있어서, 박 목사가 아는 변호사에게 부탁해 무료로 연결해준 적도 있다.

박 목사는 러브트리를 통해 청소년 문제의 실태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가출, 미혼모가정, 원조교제, 불법 토토, 고리대금, 차털이, 약물 등 언론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접한다. 그러한 아이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는 박 목사는 '언젠가 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러브트리에서 기다린다.

학생들을 향한 마음은 크지만, 박 목사는 러브트리에 상주하지 못한다. 러브트리의 문은 평일에 오후 4시 정도에 열린다. 급여가 없고 오직 후원과 자원봉사로만 운영되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건물유지비를 위해 이사회(이사장:장철근)로부터 후원을 받고, 선후배 목회자들과 교회의 후원을 받아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고 있다.

러브트리에서 낮잠 자는 학생.
그는 예상치 못한 후원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 공간을 필요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느낀다'고 고백했다. "코로나 전엔 한 달에 라면 1000개가 나갔어요. 6000원 후원을 받아 작은 컵라면 10개를 샀어요. 페인트칠도 선배가, 간판도 친구가, 전기공사도 후배가 다 해줬어요. 아직도 밖에서 번 사비가 들어갈 때도 많지만,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붙여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박 목사는 청소년 사역에 대한 한국교회의 진심어린 관심을 요청했다. "제가 새벽에도 애들 만나고, 저녁에도 애들을 만나고 있으니, 저를 보고 '왜 목회를 안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해외 선교사님들에게 선교헌금을 보내주시는 반면, 국내에서 청소년사역을 하면 선교사로 봐주시는 시각이 부족해요. '부흥 시켜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실질적인 투자는 적어요. 교회가, 특히 담임목사님이 청소년 사역에 관심을 갖고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해주세요."

한편 순천기독교청소년협회는 청소년 무료카페 러브트리 외에도, 조손가정이나 혼자 사는 학생, 다문화 학생 등 13명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월 5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학생들이 친구들과 떡볶이라도 사먹을 때 더치페이라도 할 수 있게끔 일종의 품위유지비 명목이다. 또한 청소년의 기독교 문화 체험을 위해 기독교 관련 가수들을 섭외하고 주변 교회와 연계해 찬양 집회와 간증 등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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