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지 못해도 인도하시는 주님의 촉각은 느껴져요"

"보고 듣지 못해도 인도하시는 주님의 촉각은 느껴져요"

[ 아름다운세상 ] 국내 1호 시청각장애인 박사 조영찬 전도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2년 12월 03일(토) 11:42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에서 직원들에게 수어 교육을 하고 있는 조영찬 전도사.
시각과 청각이 없는 시청각 장애인인 조영찬 전도사. 그는 우리나라 시청각 장애인 1호 박사다.

그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중 장애 속에서, 장애인들의 학업을 위한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사회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신앙 안에서의 꿈을 위해, 헌신적으로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과 같은 중복 장애를 안고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외톨이



조 전도사는 어렸을 때 장애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해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시각장애로 인해 적응을 못해 맹학교로 전학을 했다. 그러나 전학을 간 맹학교 후 청각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때서야 자신의 장애를 정확하게 인지하게 됐다고 한다. 외톨이인 조 전도사에 유일한 낙은 점자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장애를 잊고 영혼의 자유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맹학교를 졸업하면 학생들은 대부분 안마업에 종사하게 되는데 조 전도사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안마업에 종사할 수도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 읽기 좋아하는 그는 문득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작가가 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에 손에 잡히는 책은 거의 다 읽는 습관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곧 한계를 느끼게 됐다. 당시만 해도 점자책이 별로 없어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았던 것. 그는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을 쌓지 못해서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깊은 좌절감이 엄습했다.

#삶의 희망, 삶의 버팀목 아내를 만나다



깊은 좌절 속에서도 그는 한가닥 희망을 만나게 됐다. 아내 김순호 씨를 알게 된 것. 20대 초반 한 장애인선교회에 참여하던 조 전도사는 단체 행사로 연극관람을 한 후 해산하고 있었다. 그때 지체장애인인 김순호 씨가 조 전도사 일행이 저녁을 먹지 못한 것을 알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초대해 라면을 끓여 주었다. 조 전도사와 김순호 씨는 그 일을 계기로 연애를 시작, 10개월만에 결혼을 했다.

조 전도사는 아내의 사랑으로 잃어버린 꿈을 다시 회복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그는 대학에 입학해 헌신적인 내조를 받으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아내는 강의실마다 동행했고, 함께 강의를 들으면서 힘들어할 때마다 손을 잡아주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얼마나 열심히 그를 도왔던지 오히려 아내가 과로로 입원까지 하게 됐고, 그 때문에 한 학기를 휴학하는 일도 있었다.

조 전도사에게 아내는 하나님을 깊게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조 전도사는 "20대 초반에 한 장애인 신앙공동체에 입소하면서부터 신앙을 갖게 됐는데 처음에는 장애인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신앙을 가진 이들도 장애인에 대해 강압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신앙에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며 "그러나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고 말한다.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조영찬 전도사.
#국내 1호 시청각 장애인 박사. 그러나…



그가 공부를 하게 된 큰 계기는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 대회였다. 일본의 헬렌켈러로 불리는 후쿠시마 교수가 조 전도사 부부를 대회에 초청했고, 그곳에서 시청각 장애인들이 활발하게 모임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에 그는 큰 감동을 받았다. 자기와 같이 시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후쿠시마 교수가 동경대 교수로 재직 중인 것을 보고 '이 분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지원하게 된 것.

이렇게 대학에 진학하게 됐고, 졸업 후 직업을 갖기 원했던 조 전도사는 대학에서 신학과 사회복지를 동시에 전공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해보니 시청각 장애인에게는 일할 기회가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계속해 어느덧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됐다.

국내 1호 시청각 장애인 박사가 된 조 전도사는 앞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에게 강의를 맡기는 학교나 사역의 기회를 주는 교회는 없었다.

조 전도사는 "장애인 취업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회가 함께 고민에 참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시청각장애인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나 같이 혼신을 다해 공부를 했음에도 일할 곳을 얻지 못한다면 뒤에 오는 후배들은 어떻게 힘과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사회, 정부, 교회 등 다양한 곳에서 시청각장애인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기도와 원조로 성원하는 움직임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아직도 가야할 먼 길, 희망의 증거 되고 싶어



현재 그는 '하늘언어교회'라는 이름으로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오전에는 일반 교회 예배에 참석을 하고 오후에 가정교회에서 사람들과 모임을 갖고 심도 있는 내용으로 강론을 진행한다.

또한, 지인들에게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촉각문화를 경험해 보고싶은 이들을 위해 점자 필기구와 시각장애인용 바둑판 등 각종 보드게임들을 갖추어 놓고 방문하는 이들에게 체험과 교제의 장을 열고 있다.

조 전도사는 "자신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피워내기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그 과정은 견디기 어렵고 험난한 길이지만 그 열매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보람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사람은 시각이나 청각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희망이 없어진다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약하나마 제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표현모 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