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말씀)가 옥토를 만드니, 씨를 계속 뿌려라(막 4:1-20)

씨(말씀)가 옥토를 만드니, 씨를 계속 뿌려라(막 4:1-20)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예수님의 비유 연구 1

류호성 교수
2020년 07월 10일(금) 00:00
예수님은 '비유'라는 장르를 통해 천국 복음을 설명하시며, 또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법을 가르치셨다. 비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라볼레'라는 명사이다. 이것은 '곁'이나 '옆'을 뜻하는 전치사 '파라'와 '던지다'나 '놓다'를 뜻하는 동사 '발로'의 합성동사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래서 비유는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사물이나 사건을 다른 것의 곁이나 옆에 두고 비교하는 것으로, 예화나 비교를 의미한다. 그런데 '파라볼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샬'로, 이것은 짤막한 말씀, 격언, 알레고리, 수수께기나 예언자적 신탁를 뜻한다. 이렇게 '마샬'은 광의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신약성경에 표현된 '비유'의 개념과 유사하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비유의 개수는 분류하는 학자에 따라 적게는 30개로부터 많게는 75개로 큰 편차가 있으나 '비유 중의 비유'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막 4:1~20; 마 13:1~23; 눅 8:4~15)라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그럴 만한 이유는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막 4:13)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고로 이 비유에 대해 무수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연구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첫째, 이 비유의 핵심은 씨를 '뿌리는 자'에 있다는 것이다.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자로(14절), 이는 결국 예수님(제자들이나 믿는 우리들도 포함)의 사역에 대한 성공을 말한 것이다. 이 견해에 대한 반론은 씨를 뿌리는 자가 처음에만 등장하고(3절) 다시는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역할이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둘째, '씨'에 초점을 두어 '떨어진 씨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밭의 상태에 따라서 결실한 씨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씨가 각각 그 운명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견해의 문제점은 '씨'가 '말씀'이라는 점이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그것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셋째, '밭'(마음)에 초점을 두어, 밭이 결실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곧 씨가 결실하지 못하는 것은 밭(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의 문제점은 밭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밭에는 가시덤불이나 엉겅퀴만 자란다는 것이다(창 3:18).

이렇게 각각의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은 비유의 특성상 여러 개의 강조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가복음 4장의 본문을 섬세하게 읽으며,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길 원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1. 우리가 논의 하고자 하는 부분은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곧 비유(1~9절), 비유를 사용한 목적(10~12절) 그리고 그 비유에 대한 해석(13~20절)이다. 먼저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 배를 띄워 그곳에 '앉으시고' 무리들을 바라보시면서(1절) 여러 비유들을 가르치셨다(2절). 여기서 '앉으셨다'라는 표현은 가르치는 랍비의 권위를 표현한 것이다(참고, 마 5:1). 여기서 갈릴리 '바닷가'는 가르치는 공간적 배경으로 사용되지만, 이어지는 마가의 이야기에서 이 바다는 광풍을 일으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곳이다(참고, 막 4:35~41).

2. 이 비유에서 묘사된 밭은 네 개로, 곧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 그리고 좋은 밭이다. 그래서 네 개의 밭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두 종류의 밭에 관한 것이다. 곧 결실하지 못한 밭(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과 결실한 좋은 밭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결실한 좋은 밭은 전혀 다른 밭의 종류가 아니라, 결실하지 못한 밭을 기경한 밭이다.

첫째, 그것을 당시 팔레스틴의 농사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당시에는 먼저 씨를 뿌리고 나서 밭을 기경했다. 그래서 씨가 길가나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 밭에 떨어졌지만, 그 밭을 기경하고 나니 열매 맺을 수 있는 좋은 밭이 되었다.

둘째, 농부가 길가,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 밭에 각각 씨 '하나'를 뿌린 점과 좋은 밭에는 '여러 개'를 뿌렸다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에 마가는 결실하지 못한 밭에 씨를 단수로 '호 멘(4절), 알로(5절), 알로(7절)'로 표현했다. 반면 좋은 땅에는 복수 '알로(8절)'를 사용해서 여러 개, 문맥상으로는 세 개의 씨들이 뿌려졌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모든 밭에 떨어진 씨를 '더러는' 복수로 번역해서, 마가가 표현하고자 한 그 섬세한 뉘앙스를 파악하는데 어렵게 만들었다.

셋째, 길가,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 밭에서 떨어진 씨는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나 점점 성장하고, 그리고 좋은 땅에서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표현을 통해서다. 밭의 종류와 떨어진 씨의 숫자가 '3'이고, 열매 맺는 양의 숫자 '3'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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