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종말론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자(막 13:28-32)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자(막 13:28-32)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6 무화과나무의 비유

류호성 교수
2020년 08월 21일(금) 00:00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 종파뿐만 아니라 일반 교회에서도 종말(예수님의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는 주요 자료로 악용되고 있다. 그들의 근거는 이렇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말씀 그대로 뿌리째 말라 버렸다(막 11:13~14, 20~21).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아니다. 여기서는 '성전'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라"(13:28)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1948년에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은 무화과나무가 싹이 난 다음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13:30)" 일어난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40년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이스라엘이 재건된 1948년을 기준으로 40년이 지난 1988년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1988년에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세대를 잘못 계산했다고 주장하고, 세대를 80년 또는 100년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림의 날짜를 다시 뒤로 미룬다. 이런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은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일부 사람들이 이런 거짓에 미혹되어 넘어가는데 있다(우리는 예수님 재림의 날짜를 안다고 말하는 모든 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단자라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예수님의 재림을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원인은 첫째, 본문의 위치 때문이다. 마가를 비롯하여 마태(24:32~36)와 누가(21:29~33)도 무화과나무의 비유 바로 앞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와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라고 보도한다(13:26~27). 곧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니, 이어지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예수님의 재림의 시각에서 읽으면,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님의 말씀 그 자체에 모순이 생긴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3:30~31)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오셨는가? 그럼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틀린 것인가? 그러기에 여기서 의미하는 "이 일(들)은"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둘러싸고 있는 마가복음 13장의 주된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 멸망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2절)라고 말씀하시자, 4명의 제자가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복수형 지시대명사 '타우다' 사용)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들이(복수형 지시대명사 '타우다' 사용)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물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은' 다름 아닌 성전 파괴와 관련된 일들이다. 성전 파괴와 관련한 예수님의 답변이 5~37절 전체이고, 그 일부가 무화과나무의 비유(28~31)이다. 그래서 29절의 '이런 일들이'(복수형 지시대명사 '타우다' 사용) 그리고 30절의 '이 일들이'(복수형 지시대명사 '타우다' 사용)은 다름 아닌 4절의 성전 파괴와 관련된 일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전 파괴는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세대인 AD 70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29b)라는 번역에 있다. 이것은 헬라어 문장 "기노스케테 호티 엥구스 에스틴 에피 튀라이스"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너희는 그것이 문 앞에 있는 것을 알라"가 된다. 이 문장에서 3인칭 단수 동사 '에스틴'은 '그것이(은) .…이다'라는 뜻인데, 우리말 번역은 '그것'에 관계된 것을 26절 '인자'에서 찾았다. 사람이 문 앞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계 3:20 참고). 그런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문맥상 이 비유의 중심 주제라 할 수 있는 '때'가 더 적절하다. 28절과 연관해서 29절을 읽으면 다음과 같다. 곧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일이(성전파괴와 관련된)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때(성전파괴)'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문맥 다음에 왔기 때문에, 그것과 연관해서 읽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설령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26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헬라어 문장은 "아포 데 테스 쉬케스 마테테 텐 파라볼렌"으로, 직역하면 "너희는 무화과나무로부터 비유를 배워라"이다. 그 비유가 의미하는 것은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때'를 알려주기 위한 '사물'로 사용된 것으로, 이스라엘을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단어의 상징적 또는 알레고리적 의미는 문장과 문맥이 결정하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무화과나무'가 나타날 때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하면 우리는 성경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혼란을 겪는다. 사실 이단들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정작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국목(國木)을 '무화과 나무'가 아닌 '올리브 나무'(감람나무)로 지정했다. 그럼 독립한 이스라엘은 성경 말씀을 무시하는 것인가?

지금 신천지를 비롯하여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비유 풀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올바르게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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