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보여지고 느껴지는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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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1 모든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포도원 주인의 비유(마 20:1~16)

류호성 교수
2020년 09월 25일(금) 08:56
이 비유에 대한 주요 논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료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학자들은 이 비유가 '먼저되고 나중 됨'(19:30)과 '나중되고 먼저 됨'(20:16)이란 내용에 샌드위치로 들어 있고, 또한 이런 내용과 비유가 말하려는 '포도원 주인의 자비로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 비유의 본래적 형태를 찾고자, 본문에 덧붙인 것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 결과 16절이 마태의 편집이라는 것은 공통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각자 논리에 따라 1절 아니면 3~5절 또는 14~15절이 마태의 편집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마태가 전승되고 있는 이 비유를 수집해서 각색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성경 본문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마태가 우리보다 더 위대한 신학자라는 점을 인정할 때에, 오히려 우리는 이 비유의 본래적 의미에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를 시키지 않고 장터에 5번이나 나가 품꾼을 고용한 점이다. 이런 주인의 행동은 당시의 관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대해 혹자는 주인이 포도원 사정을 잘 몰라서 얼마나 품꾼을 써야 했는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서 취약한 조건하에 있는 품꾼들을 값싸게 고용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주인에 대한 오해이다. 주인이 자기 포도원 밭의 크기를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구하고자 했으면, 주인은 1시간 일한 품꾼에게 1데나리온을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이 5차례나 장터에 나가 품꾼들을 데려온 것은,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고 또한 장터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모든 품꾼들을 위한 너그러운 배려이다. 결국 주인은 빈번히 나가서 장터에 있는 모든 품꾼들을 고용한다. 무엇보다도 오후 5시까지도 일자리가 없어 마음 졸이며 초조해 하는 품군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비로움을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품꾼들, 특히 아침 6시부터 일하기 시작한 품꾼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주인은 품꾼들이 육체노동을 하기에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일손을 도와주고자 계속해서 시장에 나간 것이다. 아침 6시부터 일한 품꾼이 힘들기에 다시 9시에 나가서 품꾼들을 보내 그들의 일손을 도왔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힘들어하자 12시에, 오후 3시에 나가서 일손을 구해 포도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오후 5시에 나가서 품꾼을 포도원으로 보낸 것은, 그만큼 마지막 끝맺음이 힘들기 때문에 작은 일손이라도 보태서 일하고 있는 품꾼 모두를 격려하기 위함이다. 주인은 "결승점이 다가올수록, 고통은 점점 증가 된다"라는 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한 시간 일한 품꾼도 포도원의 하루 일정을 마치는데 협조했기에, 1데나리온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청지기를 시켜서 품꾼을 고용했다면, 그는 장터에서 체력이 좋은 사람들 일부만 데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두고서는, 고용할 합당한 품꾼이 없다고 빈손으로 왔을 것이다.

셋째는 품삯을 지급하는 순서와 그 액수이다. 주인은 한 시간 일한 자에게 먼저 1데나리온의 임금을 지급한다. 결국 이것은 아침 6시에 와서 일한 품꾼이 1데나리온을 받고 불평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12절). 주인이 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인이 품삯을 포도원에 온 역순으로 동일하게 지급한 것은 모두가 포도원의 일꾼인 천국 백성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한 시간 일한 품꾼에게 우선 지급한 것은 관심과 배려를 보인 것으로, 그들도 천국에서 소외된 자들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침 6시부터 일한 품꾼에게 제일 나중에 지불한 것은, 그가 주인으로부터 가장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처음부터 고용되었기 때문에, 다른 품꾼들처럼 일자리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또한 주인이 그의 힘든 일손을 덜어주고자 계속해서 품꾼들을 보태주었고, 간간이 주인으로부터 제공되는 간식도 제공받았다. 말하자면 품꾼에게 처음부터 주인과 함께한 은혜의 시간을 생각해 보라고 시간적 여유를 주고자, 늦게 품삯을 준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은혜는 품삯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양은 품삯으로 계산될 수는 있지만, 주인의 사랑은 품삯으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의미는 바로 문맥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넷째는 비유의 문맥적 위치이다. 혹자는 이 비유의 '삶의 자리'를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오직 마태가 기록한 그 본문의 위치가 이 비유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비유 앞에는 청년이 재물이 많음으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실패하자,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듦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에 받을 보상이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그에 대해 예수님의 답변이 주어진다(19:13~29). 그리고 이 비유 뒤에는 바로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세 번째 언급한 내용(20:17~19)과 더불어 세배데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주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20:20~28).

결국 이 비유를 통해서 마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포도원에 아침 일찍 왔다고 교만하게 기득권을 내세워 높은 품삯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요구하면 '악한 눈'(15절)을 가져 돈에 집착함으로 천국이 보이지 않기에 부자 청년처럼 예수님을 따르는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꾸 세상 권력과 높아짐에 관심이 있어 참된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품꾼으로 먼저 선택된 것은, 예수님이 12제자들을 먼저 선택한 것처럼, 주인의 은혜라는 것이다. 먼저 선택되었어도 주인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가룟 유다처럼 배반하여 나중되고, 비록 세리나 몸을 파는 여자지만 회개하고 뉘우치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21:31~32).

이 비유는 먼저 선택받은 제자들은 구원이라는 1데나리온의 상급이 주어졌으니, 주인과 함께한 은혜의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득권을 내세워 더 많은 품삯을 요구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천국 복음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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