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 호칭의 의미와 제자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 호칭의 의미와 제자도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누가복음<3>

왕인성 교수
2021년 04월 23일(금) 18:07
누가복음 3~4장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소개하면서 그 신분에 기초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를 풀어나간다. 누가는 자신들이 사람들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디베료 황제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치 종교계의 유력한 인물들을 3장의 전면에 배치한다 (3:1~2). 하지만 이 권력자들은 곧 소리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권력과 부와 명성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출세의 기회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그리고 인간적 힘이 응축된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지켜내는데 온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정 세상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빈들에서 세례 요한에게 임한다. 빈들 혹은 광야는 구약의 신실한 자들이 하나님을 만나 뵈었던 장소이다. 이 구도는 단순히 도시와 시골의 지역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주하고 번잡한 우리의 사고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님을 뵙는 그 시공간이 없다면, 세상의 권력자들 마냥 우리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예수님도 바쁜 사역 가운데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누가는 자주 기록한다(예: 5:15~16). 바쁜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독대하여 만나 뵙는 나만의 빈들, 즉 내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을 집중하여 겸허히 듣는 시공간이 있는가?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3:3~17). 그의 역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사람들이 마음과 삶으로 그분을 영접하도록 준비시키는 일이었다. 우리 역시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케하는 그 사역으로 부름받았다. 다만 이사야의 예언(3:4; 참조. 사 40:3)은 그러한 사역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소리'라고 규정한다. 소리는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사라진다. 우리는 온 맘과 뜻과 정성으로 사역을 감당한 후, 흔적, 곧 우리의 이름과 자랑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누가는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신분을 전가의 보도처럼 '하나님 앞에 자격 있음'의 근거로 활용하는데 익숙하였다. 향후 연재가 진행되면서 여러 차례 언급하겠지만, 누가는 제자로 불리는 이들에게 '주 앞에서 나는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이라는 의식'과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회개'만을 인정한다. 따라서 회개의 사람은 개인적 성공보다 하나님이 품어 살피시기를 원하시는 온 인류와 세상에 대하여 책임을 느낀다. '선생이여,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세리와 군인들에게 준 세례 요한의 대답이 인류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반영한다. 이번 주간 인류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 의식 속에 행할 작은 실천을 고민해보자.

무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다(3:21~22). 예수님의 수세 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마태와 달리, 누가는 오직 하늘의 소리로 확증되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의 신분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족보도 예수님의 사역의 범위를 아브라함을 넘어 아담과 하나님께 연결하여 온 인류가 예수님의 구원 대상이라고 설파한다(3:21~38).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이 예수님의 시험의 출발점이 된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4:1~13). 시험 문제는 세 개였는데, 금식하신 예수님을 찾아온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시험은 이적을 통해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조건문은, 사탄은 예수님의 신분을 이미 알고 있기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로 번역될 수 있다. 결국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 없이도 행할 수 있는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시아 사역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를 벌려 놓으려는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만나의 교훈(신 8:3)처럼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는 것 자체가 메시아의 길임을 천명하신다. 두 번째로 사탄은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경배를 요구한다. 이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말씀으로 대응하신다. 사탄이 약속하는 권세의 허무함과 악함, 그리고 사탄의 그 힘도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보호 여부를 통해 아들을 대하시는 사랑을 시험하라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보호를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결국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관계를 손상시키려는 계략일 뿐이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나, 이 시험은 항상 우리를 향할 수 있다. 사탄은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뢰를 끊어내는데 집중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진 우리를 향해 3~4장은 다음의 제자도를 요청한다. 첫째, 곧 사탄의 헛된 약속에 넘어가, 스러질 세상의 권세 근처에 기웃거리지 말고, 나만의 빈 들에서 하나님을 뵈옵는 시간을 갖고, 우리의 사명을 점검하되, 책무를 다한 후 '소리'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사라져야 한다. 둘째, 회개 속에 세상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느끼며, 구체적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 하나님과 자녀인 우리 사이를 단절시키려는 사탄의 모든 궤계에 대해 민감히 살피며,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어떤 순간에도 시험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왕인성 교수 / 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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