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말씀 중심의 영성, 그리고 자발적 가난의 삶

기도와 말씀 중심의 영성, 그리고 자발적 가난의 삶

[ 한국교회인물열전 ] 3. 한국의 호세아 이공 이세종 선생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21년 06월 02일(수) 11:39
【 화순=김성진 기자】 4년만에 다시 이공 이세종 선생의 기도터와 생가를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상이 바껴버린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이공 이세종 선생과 그의 제자인 이현필 선생을 깊이 연구했던 호남신대 전 총장 차종순 목사를 광주에서 만나 함께 화순으로 향했다. 4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찾은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에는 여전히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듯 했다.

"이공 선생이 하루는 길을 가고 있는데 마을에서 가장 심술궂고 못된 사람이 이공 선생을 이 나무에 새끼줄로 묶어 놓았습니다. 저녁이 된 후에 이곳을 지나다가 나무에 묶인 이공 선생을 보고는 왜 여태까지 그렇고 있느냐고 물으니 이공 선생은 묶은 사람이 한 일도 존중해서 그랬다며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차 총장은 느티나무에 얽힌 이공 선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의 호세아

느티나무를 지나 이공 선생 기도터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뜻밖에 등광교회 이원희 장로를 만났다. 그를 통해 '한국의 호세아'라고 불린 이공 선생의 가정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장로가 어릴 때여서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전부였다. 이공 선생은 28세 때에 이웃동네에서 10여 년간 머슴살이를 했다. 어느 정도 재산을 모은 후에 자신보다 16살 어린 아내를 얻어 결혼식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세상의 다른 부부들처럼 재미있게 정을 나누며 살지 못했던 이들은 등광리 부락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지만 자식이 없어 늘 걱정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친척집에서 성경을 접하고는 그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 성경을 열심히 읽었던 이공 선생은 '예수와 바울의 금욕적인 삶'과 '하나님을 향해 생명을 바친 삶'에 감동을 받아 더 이상 자녀 낳기를 구하지 않고 도리어 금욕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순결한 삶을 결단하고 아내에게 남매처럼 살아야 한다며 딴 방에 기거했다. 그 많던 재산마저 남에게 나눠주자, 결국 그의 아내는 두번씩이나 그의 곁을 떠났다.

교회사가인 김인수 목사(장신대 전 교수)는 '한국교회 야사의 성인들의 영성신앙'이라는 글 속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이세종은 부인이 쓰던 살림들을 짐꾼에게 지워 가져다주고 아내가 사는 집에 자주 찾아가 전도하곤 했다. 부인이 남자들에게 버림받고 돌아오면 다정하게 맞아줬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면 친척과 마을사람들이 한사코 반대했지만 이공은 아내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돌아온 아내를 위해 한글을 가르쳐서 성경을 읽게 했다. 이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남편 곁을 지키며 청빈하게 살았으며 이공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편의 무덤을 3년간 지키며 혼자 손수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했다.

청빈과 겸손의 삶

오늘날 우리가 이공 선생을 재조명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차종순 총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이공 선생에게서 배울 점은 그가 철저히 성경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40세에 노나복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던 이공 선생은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성경대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특히 그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를 회개했으며 양식과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차용증서를 불태우고 모든 빚을 갚아 줬다고 했다. 이공이 예수를 믿은 후에는 그에게 빚진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그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자기 돈과 곡식을 퍼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특히 늙은이와 어린아이의 집을 찾아 다니며 나눠줬다. 거지와 나그네가 찾아오면 같은 상에서 함께 식사를 했으며 아예 옷을 바꿔 입기도 했다. 어떤 이는 위선자라고 비난도 했지만 그는 겸손히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자발적인 가난의 삶을 선택했던 그는 53세 때 자신의 재산의 절반인 땅 3000여 평을 전남노회에 기부했다. 그리고 그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차 총장은 "이공 선생이 기부한 재산은 전남노회 유지재단이 설립된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보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던 등광리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을 찾아 다니며 하루도 쉬지 않고 전도했다.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밥 먹는 것까지 잊고 전도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했던 이공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겸손한 삶을 살았다. 자기 마음에 행여 교만이 드러날까봐 길을 다닐 때에도 고개를 숙이고 다닐 정도였다. 옷도 남보다 좋은 것을 입으면 그 옷이 마음에 교만을 일으켜 남을 낮게 보고 멸시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상을 차려 먹지 않고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혹시 누가 밥상을 차려와도 마음이 높아진다고 싫어하고 자기는 죄인이라면서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을 정도로 자신을 낮췄다.

그는 거지든 귀빈이든 자기 집에 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성경 말씀에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다. 거지가 구걸하러 와서는 평소에 먹는대로 주니까 너무 형편없는 음식이라며 안 먹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때로 거지에게 "당신은 혹시 마을 잔칫집에 가서 한끼라도 잘 먹을 때가 있었지만 이놈은 주님의 은혜를 알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좋은 음식이라곤 입에 넣어본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영성의 삶

이공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보물은 수도사로 생활하며 살았던 영성이다. 수도사로 생활하면서 이공 선생은 언제나 진리를 생각하며 매일 말씀만 읽고 기도했다. 그는 말년에 인가가 없는 깊은 산중에서 수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침묵으로 여생을 보냈다. 겨우 두 사람만 들어가 거처할 통나무집을 짓고 그곳에서 마지막 3년을 살았다. 영성신학자였던 최광선 목사(덕신교회)는 그의 논문에서 "이세종은 수도사가 아니었음에도 수도사들에게 요구했던 자발적 가난까지 실천했다"고 언급했다. 이세종이 재산을 포기한 것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였다. 예수 믿고 재산을 포기하는 것은 이집트의 초기 사막의 수도사들에게 나타났던 전형적인 헌신방법이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어느날 병중에 있을 때 미국인 노나복 선교사가 지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귤 몇개를 드리고 간 일이 있는데 회복된 후 몇 개의 계란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가서 문병 왔을 때 잘 대접하지 못한 일을 사과했던 일화는 그의 영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세종 선생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기록은 대부분 그의 제자들의 증언으로 이뤄져 있다. 이세종 선생의 영향을 받아 제자로 살았던 이현필 선생, 강순명 목사, 그리고 최흥종 목사 등 삶이 곧 이세종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고 진리대로 살려고 했던 이공 이세종 선생. 그의 영성과 수도사로서의 삶이 오늘 한국교회에 다시 회복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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