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작은 믿음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가진 작은 믿음만으로도 충분하다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0

왕인성 교수
2021년 06월 15일(화) 07:17
누가복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개를 매우 강조한다(참조. 3:8~14; 5:8; 15장). 심판이 실제상황인 종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시 균형 있는 종말관에 대해 짚고자 한다. 누가가 종말의 시점을 뒤로 밀어두는 경향이 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그런데도 왜 종말을 언급하는가? 신학적으로는 종말에 두 범주가 있다고 이해한다. 즉 '우주적 종말' 그리고 '개인적 종말'이다. 우주적 종말의 시점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이기에 우리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종말은 개인의 종말, 곧 죽음이다. 우주적 종말은 우리의 손 밖에 있으나, 개인의 종말은 현실이며, 우리의 삶의 행적이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종말 시점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6~17장은 여러 비유와 가르침으로 종말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권고한다. 우선 불의한 청지기 비유(16:1~13)는 예수님의 비유들 중 가장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청지기가 주인에게 손실을 입힐 정도로 사업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은 물증을 잡고자 장부를 요구한다. 해고가 임박한 것을 직감한 청지기는 채무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감해주며 자신의 호의(?)를 빌미로 살 길을 모색한다. 놀랍게도 주인은 이 청지기의 처신을 칭찬한다. 그러나 이 비유의 본질은 악한 행위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찾아올 불행한 결과를 예측하고 자신에게 운용 가능한 재물을 사용하여 미래를 대비하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늘 창고는 비어있는데 이 땅의 창고에만 쌓아놓고 안심하며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섬기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16:13)

누가는 연이어 부자와 나사로 비유(16:19~31)를 통해 재물의 선한 사용에 대해 재차 강조한다. 매일 호의호식하던 부자와 그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으로 연명하던 나사로의 운명은 죽는 순간 역전된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떨어진다. 누가는 이들의 운명이 갈린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가난한 자들을 대접하라는 가르침, 탕자의 비유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서도 건강한 재물 사용에 대한 권고를 꾸준히 해왔고, 그 가르침은 부자관원 이야기(18:18~26)와 삭개오 이야기(19:1~10)를 통해 정점에 도달할 것이다. 목전의 나사로를 방치했던 부자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음부의 참상을 전하면 회개할 것이라고 말하여 자신의 처지가 재물과 관련하여 회개하지 않는 삶 때문이었음을 암시한다(16:30).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하는 권함도 듣지 않을 것이라 하며, 이미 음부에 대한 경고가 지상에서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도처에서 들리는 회개 촉구의 소리를 흘려보내지는 않는가?

그런데 개인의 종말 외에도 우주적 종말에 대한 징조가 있다면 준비를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21:5 이하에서 난리와 전쟁, 기근 등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는 것 같으나, 그것은 시간을 가늠하는 징조가 아니라 심판의 시작이며 처참한 결과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어야 한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시점에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로 멸망당했으며, 롯의 때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집을 짓더니 하늘로부터 유황이 비 오듯 하여 멸망했다. 예수님은 인자의 나타나는 날도 비슷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둘이 한 침상에 누웠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고,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남겨짐을 당할 것이고 하여 일상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운명이 갈라질 것을 말씀하신다(17:21~35).

그렇다면 16~17장이 권하는 종말을 대비한 일상의 준비는 무엇일까? 첫째로, 범사를 다시 하나님에게서 시작하는 것이다. 열 명의 나병환자중 한 명의 사마리아인만이 주께로 돌아와 감사를 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온전한 구원을 받았다. 은혜를 입었으나 감사를, 하나님을 잊은 자들에게는 구원이 언급되지 않았다.

둘째,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여 너그러운 자가 되어" 하늘 창고를 채우는 것이다(딤전 6:17~18).

셋째, 우리의 삶으로 남의 거침돌이 되지 않는 것이며, 용서의 순간에는 과감히 용서하고, 그리고 본분을 다한 후에는 무익한 종으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히 말하는 태도이다(17:1~10).

주님의 권고에 부담을 느낀 제자들이 마치 믿음이 부족하여 순종이 어려운 것처럼, '믿음을 더하소서'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가진 작은 믿음만으로도 종말 준비에 충분하다고 하신다(17:5~6). 종말을 준비하는 순종의 길은 큰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작은 믿음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 열린 눈, 열린 귀와 열린 의지의 문제이다. 오늘 내 삶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 아브라함의 품을 향하는가 아니면 음부를 향하는가?

왕인성 교수 / 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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