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권위인가? 내가 세운 권위인가?

하나님이 주신 권위인가? 내가 세운 권위인가?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3

왕인성 교수
2021년 07월 09일(금) 14:45
예수님이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신, 이른바 성전정화사건(19:45~48)에 대해 종교 지도자들은 그 채찍을 자신들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대중들 앞에서 예수님을 공개리에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누가복음 20:1~44에는 예수님과 유대 종교지도자들과의 첨예한 대결이 펼쳐지는 다섯 가지 이슈가 다루어진다: (1) 예수의 권위 논쟁(1~8절), (2) 포도원 농부 비유(9~19절), (3)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20~26절), (4) 사두개인들과의 부활 논쟁(27~40절), (5) 시편 110:1의 다윗의 자손에 대한 해석 논쟁(41~44절). 그리고 20장은 모든 백성이 들을 때 제자들에게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는 권고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권고가 나타난 이유는 자신들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종교지도자들의 행태에 대한 고발이 20장 전체에 녹아있는 까닭이다.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와 같은 일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은 이미 하늘에 의해 주어진 예수님의 권위와 권세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4:32, 36; 5:24).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일행은 자신들만이 종교적 사안뿐 아니라 생활 일반에서도 백성을 통제할 권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터였다. 예수님은 역으로 그들에게 세례 요한의 권위의 출처에 대해 물으셨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임을 인정치 않으면 세례 요한을 지지하는 백성들의 판단을 모욕하는 셈이 되고, 인정한다면 왜 세례 요한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는가를 답해야 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였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그들은 결국 답하지 않겠다고 발을 빼지만 백성들은 이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어 9~19절에는 포도원 농부 비유가 등장하는데, 예수님은 당시 소작농이 많았던 상황을 빗대어 설명하셨다. 어떤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에 일꾼을 들여 농사를 짓게 하고 추수 시점에 종들을 보내어 소출을 걷고자 할 때, 일꾼들은 주인에게 소출 바치기를 거부하고 주인의 종들을 해치고, 포도원을 빼앗을 심산으로 심지어 상속자 아들마저 죽이게 된다, 주인이 아들을 죽인 일꾼들을 심판하게 될 것을 말씀하실 때, 종교지도자들은 그 비유가 자기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고, 예수님을 로마에 넘길 것을 도모하게 된다. 곧 세금 이슈를 꺼내 들고는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의 옳고 그름을 질의한다. 참으로 교묘한 질문이었는데,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로마의 협조자가 되어 민족적 메시아의 자격이 없다고 떠벌릴 것이고, 내지 말라고 하면 반란의 빌미로 합법적으로 로마에 예수를 넘길 구실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은 동전 데나리온의 황제 형상을 가리키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지혜로운 말씀으로 그들의 시험을 무력화시킨다. 예수님은 비록 현실로는 로마가 다스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선포하셨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자식을 보지 않은 장남을 대신하여 차남이 형수와 결혼하여 첫 아들을 형의 이름으로 대를 잇게 하던 형사취수, 혹은 계대법으로 알려진 전통을 들어, 일곱 아들과 결혼한 여인이 부활 후에 누구의 아내인가를 조롱조로 질문하였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는데,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판단하여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오경에 있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을 근거로 드시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는 과거적 표현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다'는 현재적 표현을 통해 하나님 안에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고 보호되고 있다는 말씀으로 사두개인의 생각을 무너뜨리셨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거부하지 않으시면서도 시편 110:1에서 다윗이 주로 칭하는 존재가 메시아 예수이심을 상기시키며, 땅의 왕권보다 더 높은 차원의 권위를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종교지도자들과의 첨예한 갈등이 대두되는 20장은 다음의 교훈을 제공한다. 인간의 얄팍한 꾀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 없다. '거룩'이라는 명분으로 하나님과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성경의 권위로 말하지만, 하나님에게서 이득은 취하고 하나님에게 마땅히 돌릴 영광과 열매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목적 삼을 때,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임한 심판이 우리를 향할 수도 있다. 종교지도자들의 권위 논쟁은 우리 밖에 그 권위에 합당한 자가 없다는 아집과 독선에서 출발하였다. 최근 당신의 어떤 권위가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인가 내가 세운 권위인가? 위선적인 경건을 통해 스스로 세운 권위때문에 분노하고 있지는 않은가? 땅의 권세를 능가하는 예수님의 권위는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기꺼이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내 권위를 내려놓은 경험은 무엇인가? 건강한 권위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자.

왕인성 교수 / 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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