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1

왕인성 교수
2021년 06월 22일(화) 09:27
누가복음 18장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 비유(18:2~8)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18:9~14)가 들어있고, 18장 자체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라고 시작하기 때문이다(1절). 예수님은 그 비유를 통해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불의한 재판관도 굴복할진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는가 말씀하시면서 중단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권고하신다.

특이한 것은 이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의 위치이다. 종말에 대한 가르침(17:22~37)이 포함된 17:30은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말씀하며, 그 비유의 종결부분인 18:9에도 '인자가 올 때'라는 말씀이 있어, 앞뒤의 유사 문구로 괄호를 치고 가운데 내용을 강조하는 문학기법 인클루지오(inclusio)를 형성한다. 인자가 오시기까지 성도가 기억해야할 기도의 모범이 담겨있다는 뜻이다. 곧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는 17장에서 말한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맞닥뜨릴 여러 장애와 환난과 억울함에 대해 반드시 하나님이 신원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를 중단하지 말 것에 대한 권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는 이어지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기도의 덕목으로 그 주제를 확대한다. 흥미롭게도 누가는 18장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나, 자기 의로 가득하여 하나님이 필요 없는 세 부류의 사람과 주님의 허락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세 부류의 사람을 대조하여 배치한다. 우선 바리새인은 자신이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 그리고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금식과 십일조를 드린다고 기도하여(11~12절), 남에 대한 배려는 없고 독선과 자기 자랑으로 일관한다. 부자 관원은 영생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어려서부터 주의 계명에 표면적으로는 충실하고 건강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에 심히 근심하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18~23절). 그는 재물을 더 의지하여 하나님을 내친 셈이 된다. 제자들도 못지않다. 부자 관원의 모습을 지켜본 제자들은 "우리는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자랑을 펼쳐 놓는다(28절). 마태복음은 동일한 문맥에서 제자들의 자랑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하여 상급에 연연하는 헌신은 그들의 믿음의 가치를 격하시킬 뿐이라고 말씀하신다(마 19:30). 자기 의로 가득 찬 이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말함에도 하나님을 위한 자리와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꺼이 다가가실 수 있도록 긍휼에 기대어 구하는 기도의 모습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세리의 기도이다. 세리는 똑바로 서서 하늘을 향해 나팔 불듯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달리,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한다(13절).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닌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평안히 갔다고 말씀하신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는" 원리가 기도에도 적용된다는 말씀이다(14절). 두 번째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기를 데려오자 제자들이 꾸짖는다(15절). 바리새인들이 누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가를 판단하고 자신만을 그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오만을 제자들이 따라하며 누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없는가를 자기들이 정하고 있다. 사실 제자들 자신도 늘 실패하여 어린 아기 마냥 주님이 오라하지 않으시면 주께 나아갈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경험을 믿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인 어린 아기처럼 우리는 아무리 제자가 되었어도 하나님의 절대 보호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인정해야한다. 나를 지탱한다고 믿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는 어린 아기의 마음으로 주께 나아가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맹인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에서도 놀랍게도 제자들 혹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로 추정되는 앞서가던 자들이 꾸짖어 그가 예수께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35~39절).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피로 허락하신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갈 기회를 가로막을 권리는 우리에겐 없다(히 4:16; 10:19~20). 주님은 18:8에서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다. 하나님을 그리고 믿음을 논하는, 지금의 우리의 기도는 독선과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기도인가? 아니면 항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겸비하고 다른 이들을 돌아보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칭찬을 들을만한 기도인가?(42절).

왕인성 교수 / 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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